알페스가 정말 N번방 같은 성착취일까?
비판 9. 문자행동은 정치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답변 9. 물론 정치인이 자신의 휴대폰을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고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생업을 위해 그런 사생활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간판이나 전단지에 개인의 휴대폰 번호가 자발적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들에게 사생활이 중요하지 않아서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정확히 어떻게 구분될지 분명친 않지만 국민을 대의하여 정치권력을 행사하겠다 하면 일정 정도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것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 재산공개도 엄밀히 말해 프라이버시의 포기이다. 사생활을 조금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국회의원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 인해 심화된 경제 문제를 이슬람이라는 종교 문제로 교묘하게 포장한 사안을 종교 비판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처럼 엄연히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연루된 일을 이슬람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비약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종교로서 이슬람을 무조건 용인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슬람 문제가 아닌 것을 이슬람 문제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긴급한 사안이라는 말이다.
우파의 선동과 인종주의가 합쳐진 이슬람 공포증과 정당한 이슬람 비판을 분간하지 않으려는 좌파의 위선은 쿠아시 형제의 범죄를 무조건 인종차별과 계급갈등의 폭발로만 해석한다. 그러나 범행 직후 쿠아시 형제는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지 '이슬람을 차별하지 말라!'거나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이슬람은 미개한 때문이 아니라 한때 너무 영광스러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옛날에 우리집 부자였어'라는 이들의 자원은 열등감이 아니라 턱없는 자긍심이다. 바보들만 이 역설을 모른다.
지제크는 이 책 서문에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밝혔다. 모두 알다시피, 무신론자가 곧 좌파는 아니지만, 급진 좌파의 '급진'을 뿌리까지(radical) 사유하게 되면, 거기에 가닿게 된다. 이런 사실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 말해 주는 진실은, 이택광처럼 어정쩡한 좌파와 달리 급진 좌파는 같은 사건을 계급갈등에 고착시키거나 제국주의로 환원시키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이다. '가짜 좌파/급진 좌파'가 이런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라면, 이처럼 어리석은 사도(使徒)는 어느 방으로 모셔야 할까?
지제크는 테러를 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정일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적한 오해의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번역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맥을 따져보면 충분히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들마저도 이미 수립된 자신의 의견에 맞춰 임의로 갖다 붙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논란이 되는 사안일수록 자신의 편견을 넘어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신중한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