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중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큰 폭으로 사라졌다.
교육부 발표문에는 '고교, 대학, 학부모, 정부'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럴 경우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고교 교사와 대학 당국, 학부모는 서로 입장이 크게 다르다. 고교 교사들은 교육적 의미를 우선시하며 특히 수업 파행을 막기를 원한다. 학부모는 자기 자녀의 대학진학 유불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은 어떤가? 특히 상위권 대학은 학교교육이나 학생들의 건강이 어떻게 되든 변별력을 최우선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대입전형의 3주체들 간에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세계 주요국에서는 이런 프로세스를 밟지 않는다.
배점으로 보면 수학과 국어가 매우 중요해진다. 탐구과목은 점수 따기에 더 유리한 과목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전형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다. 특히 수학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나서 대학이나 사회에 나와 가장 쓸모가 적은 과목이 수학이란 점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소 알고 있다. 이런 과목으로 학생을 변별한다는 것은 수학에 있어 선천적으로 약한 머리를 타고 났거나 기초를 놓친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꺾고 진학을 얼마나 왜곡시키게 될지 생각해보라. 이는 너무나 불공정한 일이다.
교육이 여러 가지 분야에서 티핑포인드(tipping point)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교실 내 증가된 학생의 다양성, 학생의 학교교육 불만족도, 상위 20~30%를 위한 교육에 동참하는 저급한 교육 윤리성, 중앙정부의 일방적 통제와 정책의 거듭되는 실패, 교사의 무기력과 교사 공동체의 붕괴, 학교교육의 한계, 지식 전달식 낡은 교수법, 유례없는 복잡성 증가, 학생들의 건강 악화, 높은 사교육 의존의 부정적 영향, 무한 경쟁과 양극화로 특징 지워진 신경제의 한계 등>이라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거나 개발하지 못한 채 분노와 열패감을 안고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를 떠나고/졸업하고 있다.
학습의 책임을 이양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변화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탈표준화'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표준화된 교육은 일부 학생만 끌고 가는 것이며 다수를 낙오시키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표준(standards)은 긍정적이지만 표준화(standardization)는 부정적이다. 교육의 표준화는 표준화 시험을 낳고, 표준화 시험 결과의 공개는 학교 간, 학생 간을 비교하게 해서 경쟁을 지나치게 심화시킨다. 결국 교육의 표준화는 교육을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오늘날의 학교교육의 붕괴를 초래한 원흉이다.
한국은 채점자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 2030년 '표준화 시험 단계적 폐지'와 같은 신문기사를 기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입시중심 교육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표준화 시험의 폐지가 가장 필요한 나라가 한국인데도 말이다.
교사가 학습 촉진자, 동기유발자, 코치 등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한국에 이런 변화는 거의 일어나고 있지 않다. 어쩌면 교사가 교단 위 현자의 위치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교사의 권위를 다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교사의 역할 변화는 빨리 일어날수록 좋다.
지금 학교에는 수많은 '학포자'가 있다. 이들을 단순히 어쩌다가 기초를 놓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학생들이라고 보고 이들의 보정 교육을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현재의 학교제도 자체가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계층상승의 수단으로서의 학교교육의 기능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더 이상 졸업장과 우수한 교과 성적이 좋은 직장과 직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학습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수업시간마다 "이걸 내가 왜 배워야 하지? 이걸 어디에 쓰지? 이런 교과지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는데 이를 왜 지금 배워야 하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교실에도 다양한 능력의 차이, 수준의 차이, 흥미의 차이, 장래 희망의 차이가 있는 아동들이 함께 앉아 있다. 당연히 개별화 지도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는 데는 개별화 지도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개별화 교육의 여건을 갖추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럴 재원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지속시킨다면 '학포자'의 양산은 불가피하다. 이는 각 개인들에게 최적의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교육이며 이는 개인적, 사회적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2035년쯤에도 전통적인 학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학교 제도에서도 잘 배우는 학생들 중심으로 그 규모가 작아질 것이다. 전통적인 학교에 맞지 않는 아동을 강제로 또 획일적으로 산업시대의 학교 시스템에 가두는 것은 21세기 사회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개인적, 사회적 낭비다. 전통적인 학교(고교 수준을 말함)는 다닐 가치와 의의를 느끼는 사람만 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전망을 고려한다면 현재와 같이 다수의 학포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고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전환하려는 생각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너무 흔한 광경이 되었다. 교사들은 이런 벅찬 현실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것에 너무 힘들어한다. 이런 현상은 권력의 이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학생이 불만스러운 일에 대해 당당히 교장, 교사에게 말하는 시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교사의 행위를 휴대폰으로 찍어 고발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교실이 무너지고 비행이 심해진 데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다른 큰 이유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어느 나라나 인성교육의 효과는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 인성문제를 일으킨 환경적 요인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허술한 실행, 인성도 주입식으로 하려는 등의 낡은 교수법의 문제, 잘못된 전략의 채택 등이 인성교육의 주요 실패요인이다. 인성교육을 위해 법제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을 하면서도 표준화 시험 성적이 그렇게 높게 나온 것은 대단한 성공이다. 게다가 본토인들의 자녀들과 이주민의 자녀들 사이에 PISA 성적의 차이기 거의 없다는 것은 매우 공정한 교육을 했다는 의미다. 온타리오 주는 학습장애를 가진 아동들에 대해서도 '높은 기대'를 유지한다.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성공/학습'이란 질 높은 통합교육을 하고 있다.
모두의 미친 짓 : 정부는 안 바뀌면서 교장·교사가 바뀌기를 바란다. 교장·교사는 안 바뀌면서 학생들만 바뀌기를 기대한다. 학부모는 안 바뀌면서 자녀가 바뀌기를 기대한다. 사회 일반인, 정치가, 교원, 부모들이 좋은 인성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아동,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격차와 불평등의 심화, 소외와 차별의 난무, 서로 다름의 불인정, 자기 성찰은 게을리하고 상대방 공격에만 열중하면서 사회갈등의 완화와 사회통합을 기대한다.
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문제도 '누구를 위한 학력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교육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과목인 영어와 수학의 반영 비중이 높아지면 가난한 가정 출신이 불리할 수 있다. 그리고 쉬운 수능에 대해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는 상위권 학생의 학력을 중요시하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쉬운 수능이면서 절대평가를 할 경우 중하위권 학생이나 상위권 아래의 학생들에게는 더 공정하고 장점이 많다. 쉬운 수능의 낮은 변별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보면 한국 사회는 공부 잘하는 상위권 위주의 학력관에 빠져 있다고 생각된다.
교사가 비난받는 영역은 참으로 다양하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보다 학원을, 교사보다 학원 강사를 더 신뢰하며 교사를 비난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를 교사만의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학교 교사들에게 학원 강사들처럼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지도에만 전념하라고 한다면,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들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수능시험에도 있다. 매년 거의 비슷한 유형으로 시험문제가 출제되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반복훈련이다. 이런 훈련을 위한 전문성에 있어서는 학원 강사가 교사를 앞설 수밖에 없다.
역사 서술에서의 중립은 오직 지배적 힘을 가진 집단의 입장에서 볼 때 중립일 뿐이다. 어떤 수준의 서술이 '올바른'이고 어떤 수준이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 올바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누가 올바름을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폭력'에 해당된다.
단편적 사실을 암기하고 주입하는 교육을 더 이상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전면 재구조화한 것이 바로 지난 9월 고시한 2015개정 교육과정이다.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국정화된 내용을 진리처럼 주입시키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2015개정 교육과정 정신과 정면 모순된다! 이제 역사 과목을 포함해서 어떤 교과서도 단편적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하지 못하도록 이번에 교육과정을 바꾸었다.
죄악의 다른 하나는 '전체 내용을 다 훑기 위해 빠르게 진도 나가기(content coverage)'다. 지금까지의 학교수업은 교사가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훑는 것이 중심이었다. 빅 아이디어를 도입한 취지는 바로 이런 수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빅 아이디어를 활용한 수업은 전통적인 단편적 지식들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를 도출하고 이를 핵심질문과 관련 활동을 통해 깊이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먼 훗날 낱개의 지식은 다 잊더라도 일반화된 지식과 핵심원리는 남는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시험을 위한 삶'에서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싱가포르는 학습과 삶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싱가포르는 이런 전환을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전체의 20%를 여백(White Space)으로 비워두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20% 학습량 감축을 시도했지만 형식적 감축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싱가포르와 같이 20% 여백을 가질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