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간 임금수준의 차이는 제도적·사회적 '성차별'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남성과 여성에 내재한 어떤 본질적 경향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 즉 남성이 좀 더 높은 수당을, 여성이 보다 낮은 수당을 지급하는 일을 선택하는 '자연적' 기제가 있거나 혹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효율적이고 유능한 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게시물의 내용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카드뉴스가 인용하는 발화자들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며 무슨 말을 했는지를 검토해봐도 우리는 게시물의 '지적 권위'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이며,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인용대상을 편의적으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연구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출처나 링크조차 표기하지 않는 게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첫째, 이들의 성적욕망의 표현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태도는 상업적 포르노그라피만이 아니라 여성 연예인, 일반 여성을 촬영한 사진의 공유 및 "품평", 소개, 나아가 (성적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갖가지 평가와 농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 걸친 행위에서 발견된다. 둘째, 이들은 성평등, 정치적 올바름 등의 사회적 규범을 명백히 위반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진보·자유주의의 다양한 수사를 빌려와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 차원에서의 전유만은 아니며, 일부는 실제로 자신을 진보적 유권자·시민으로 규정한다.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두 배 이상 득표했다는 대구경북 지역 출구조사결과가 공개될 때, 60대 이상에서 홍준표 후보가 제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 이 '대구경북노인들'은 한국을 아직 전근대의 영역에 붙들어놓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목당한다. 2000년대 후반이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정치에 관심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세대들을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확정짓는 시기였다면, 놀랍게도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기 전에 화살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우파정권의 변명불가능한 실책만의 소산이 아니며, 그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오던 가치 자체가 이동했음을 함축한다.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의 반동성애,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해 광신적인 소수자혐오에 공적 인물이 굴복하는 광경은, 그것이 제 아무리 정치적 고려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합리성이 반지성적·반헌법적·반인권적 광신에 너무나도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곳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지금 헌법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이-나는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이 시민권의 행사에 어떠한 걸림돌도 될 수 없다는 입장만이 유일하게 공화국과 헌법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라 믿는다-당선 이후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의 떼쓰기 앞에서 공화국과 헌법, 인권의 충실한 수호자가 된다는 보장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선거 결과 자체보다는 선거 뒤에 어떤 난점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쪽이 좀 더 이것저것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문재인 혹은 안철수 누가 되든 간에 현 시점에서 의회를 단일 정파/정당이 장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누가 당선되든 의회 내에서의 타협과 조정 가능성이 정국의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서 위험요소는 민주당 내 친노-친문 세력의 성향, 그리고 안철수라는 개인의 인격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달려 있다.
그가 유교적 여성관의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사항들은 너무나 크고 광범위해서, 그냥 우리가 (최근의 유행을 따라)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들의 사례를 모아놓은 것과 차이가 없다. 여성주의 및 여성혐오에 관해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항의 대부분이 특별히 "유교적"이라기보단 대부분의 남성중심적 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다른 문화권 혹은 다른 포르노 문화의 여성관과 "유교적" 여성관의 유의미한 차이를 짚어내지 않는 한 필자가 주장하는 "유교적 여성관"이 딱히 유교적일 이유도, 따라서 K-POP이 딱히 "신유교주의적 포르노"일 이유도 없다.
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절 집회에 가서 노동자 욕하고, 쌀값투쟁 자리에 가서 농민을 경멸하는 발언을 하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금 집회에서 여성 집단에 대한 비하를 너그럽게 용인하자는 주장이 전략적으로 멍청한, 우리 같이 집회 포기하고 자멸하자는 이야기랑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처럼 자명한 사실조차 보지 못하는 이들이 집회에서의 여성혐오를 옹호하며 자신들이 "현실정치"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게 심각한 블랙 코미디라고 느낀다. 유감스럽게도 그 선량한 '진보'들은 현실정치를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그걸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2년 전 서울시 인권헌장 사태를 기억하는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반지성주의자들의 이러한 행위를 방관할 시 한국의 공적 기구는 너무나도 쉽게 이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끌려갈 수 있으며 정확히 그게 이들이 노리는 바이다. 탈동성애 그룹은 동성애자들의 "교정"을 이야기하지만, 혐오·강요·폭력·차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집단, 몇몇 목사나 전도사의 기괴한 말에 어떠한 합리적 논의 없이 좀비처럼 움직여가는 위험한 광신도들의 집단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교정의 대상인가?
규정된 강도 및 발사각을 모두 위반한 경찰측의 물대포가 고인의 두부를 직격했고, 이를 맞고 쓰러진 고인이 단단한 도로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기까지 발사가 이어졌으며 이후 고인이 어제 오후 사망할 때까지 의식불명 상태였음은 누구나 쉽게 확인가능한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정확한 사인을 밝힌다는 이유로 부검을 신청한 경찰측의 행위는 사실상 스스로의 살인혐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영상자료 등을 통해 명확히 기록된 근거로부터 비롯되는 가장 유력한 해석, 즉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사망을 인정한다면 "정확한 사인"을 새삼 밝히겠다는 입장표명을 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서울대기독교수협의회와 서울대기독교총동문회가 생각하는 종교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혐오 표현과 타인에 대한 강요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로서는 이들의 홍보자보에 나온 단어를 빌려 "진실"과 "진리"에 따라 "공동체 건설"에 주력하고자 하는 양식 있는 현대의 기독교 단체가 왜 혐오 표현과 타인에 대한 강요를 자신들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간주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이 혐오와 강요에 의존해서밖에 존속할 수 없는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혐오와 강요를 인정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대신 단체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반성하고 고치는 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태도 아닌가?
전우용 선생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분리한 뒤 시사인의 해당 기사를 후자에 분류한다. 그런데 특히 논쟁적이었던 "정의의 파수꾼들" 기사를 보면, 데이터 분석 자체가 해당 영역에서 아카데미즘적 훈련을 받고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축적하고 있는 김학준 선생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전우용 선생과 김학준 선생 중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론 분석에서 누가 더 아카데미즘에 속하고, 누가 더 전문가인가?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전우용 선생이 한국사학계에서 어떤 스칼라십을 쌓았든 간에, 그가 아카데미즘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면 동의하겠지만, 이 주제에선 그냥 아마추어A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시사인의 해당 기사야말로 좀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메갈리아4'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 본문을 2015년 6월 17일 생성시점부터 전부 훑어 읽었다. 내 일차적인 결론은 이렇다: 최근의 혐오표현을 문제삼으며 메갈+워마드를 문제삼는 사람, 그중에서 특히 "메갈"의 대표집단으로 메갈리아4 페이지를 짚으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이들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에 진입할 자격이 없다. 실제로 메갈리아4 페이지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대학교 학부 교양수업이나 초보적인 여성주의 개설서 수준에서 다룰 만한 주제들로, 반 사회적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성평등을 여성주의 없이 해나갈 수 있다거나,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의당이 현재의 '다수 당원'들을 따라 '7%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선점하고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려는 경찰의 해석과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여성혐오를 강조하는 해석이 그 자체로는 상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자가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이해한다면, 후자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한다. 요컨대 두 입장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고 있으며, 적어도 이 케이스에서는 양립가능하다. 경찰은 사회적 설명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며 그럴 의도를 갖지도 않기에, 경찰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것을 이유로 사회적 설명을 거부하는 것은 서로 다른 분야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시민으로 다른 이들과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당연하지만 이것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습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며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여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혐오가 무엇이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성소수자는 괴물이 아닌 인간이며 그에 대한 혐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간을 피부색과 출신지에 따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한국이 누군가가 스스로의 의도와 무관하게 잠재적 피해자로, 또 잠재적 가해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며 더 이상 그런 곳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