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선고와 같다.
장률 감독의 '춘몽'을 봤다. 영화 제목처럼 정말 '봄날의 꿈'같은 영화다. 근래 들어 이처럼 슬픈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표현한 영화는 처음 만났다. 은평구 수색은 첨단과 계획과 부의 상징인 상암DMC와 철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네인데,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이다.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수색은 상암DMC의 반대말이다. 이 두 동네를 지하보도가 연결하는데 직접 방문해 보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가난한 수색에 사는 마이너리티들이 핍진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지켜주는 영화가 '춘몽'이다.
지금 한국 사회엔 유난히 세렌디피티가 차고 넘친다. 우선은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씨 딸의 경우다. 승마를 하는 최씨 딸이 체육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하려고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까. 특기자 종목에 승마가 처음으로 포함된다. 모집 요강도 '원서 마감일 기준 3년 이내의 수상 내용'을 평가하게 돼 있지만 원서 마감 후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로 당당히 합격한다. 우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학 후 수업 불참 등으로 제적 경고를 받았는데 엄마와 함께 학교에 다녀간 뒤 학칙이 개정된다.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 사실을 자꾸 상기시켜, 어쩌든지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어쩌든지 불편하게 만드는 게 시예요", "우리가 아는 것은 참 적어요. 뭘 좀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아는 것 가지고 폼 잡지 말고, 모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른다고 하면 더 밑으로 떨어질 데가 없잖아요. 몰라서 삼가면 나도 남도 덜 다쳐요. 한 편의 시는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경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