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사이의 전략적 소통은 이미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지가 막막한 때일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일이다. 특히 낡은 언어를 극구 피해갈 줄 알아야 한다. '독자적 핵무장'이니 '전술핵 재배치'뿐 아니라 '북을 대화로 끌어내는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도 낡아빠진 언어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통일만이 살길이다'는 익숙한 옛 노래를 다시 불러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제 통일은 잊어버리고 남북이 이웃나라로 평화롭게 살자'는 주장도 새로울 것 없는 공리공론이다. 이 땅은 무작정 통일을 부르짖는다고 통일이 되고 평화가 오는 곳도 아니려니와, 점진적·단계적 과정으로서의 통일마저 외면한 채 두 나라의 항구적 평화공존을 주장한다고 평화가 달성되는 지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화를 퍼트리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북중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만들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이 신화에 집착하는 사이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더 강화될 뿐이다. 설사 중국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문제해결과 거리가 멀 것이다. 문제의 최종적 해결 이전에 한반도 상황은 준전시상태로 진입하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약점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여소야대의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선거일정을 고려하면 이 구도가 앞으로 3년 가까이 계속될 수 있다. 정부가 새로운 의제를 추진할 수 있는 황금시간과 겹친다. 의회와 협력관계를 맺지 못하면 정책추진이 어려워진다. 둘째,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지만 득표율은 41%에 불과하다. 다자구도였던 탓이기도 하지만, 60% 유권자들의 민심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사드가 한국방어의 필요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며 그 뒤에 작동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만을 겨냥하고 있으며 여기서 미국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대응으로는 사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 어렵고, 한중관계의 복원도 요원하다. 사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관련된 문제로, 남북관계의 악화와 북한 핵능력의 강화가 동북아로 사드를 끌어들인 셈이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으면 사드가 아니더라도 다른 갈등요인이 반복해서 출현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야권의 누가 승리를 하더라도 수구를 압도할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는 새 정부가 개혁 작업을 힘있게 추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며,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촛불혁명의 진전도 새로운 장벽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 당장 더 큰 문제는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유력 정당과 후보가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정치공학적 고려가 종종 기득권 세력에 타협적 태도를 취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때처럼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프레임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가장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 등 외치만 맡겠다고 흘리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할 수도 없고 내치가 받쳐주지 않는 외치는 무력할뿐더러,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할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대응 등 내치보다 외치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내치에 실패하면 국민이 일시적인 고통을 받는 데 그치지만, 외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단순명쾌한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거국내각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우선 내치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는 거국내각의 경우 외치, 국방에 대한 결정권은 대통령이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 거국내각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제안된 아이디어인데, 외치와 국방 등과 관련한 업무를 대통령이 그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치와 국방 문제까지 거국내각 총리에게 넘기기도 어렵다.
사드 배치로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받을 양자관계는 한중관계이다. 사드가 군사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한중관계의 진전을 외교적 성과로 과시해왔는데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며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항우가 유방을 초청한 연회에서 항우의 부하가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말을 인용했다. 사드 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판단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종종 듣던 진보 성향의 팟캐스트 방송을 들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저 걷기의 지루함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짧은 대화를 다시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태우 시대 재평가해야죠. 노동자 실질임금이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복지도 확대되고, 남북교류의 물꼬도 트고." "맞아요. 재평가해야죠. 지금에 비하면 그때가 정말 좋았어요." 어떤 비판도 없이 노태우 시대가 그저 '좋았던 때'로 묘사되었다. 그것도 모든 출연자들의 절대적 동의와 함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인 대선에서는 현재의 다자구도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해결책으로 야권통합론이나 연대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다당 구도를 정치공학적 논리에 따라 변경시키는 것은 민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까지보다 통합과 연대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햇볕정책과 6자회담이 중단된 지 오래되었다. 지금도 북의 반복된 핵실험의 책임을 햇볕정책과 6자회담을 전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과관계조차 무시하는 주장이다. 지난 8년 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은 '저강도 제재'를 유일한 기둥으로 삼았다. 따라서 저강도 제재가 효과가 없으니 고강도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최소한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땅한 고강도 제재수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는 북의 핵능력 강화 명분을 세워주고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을 고조시킬 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임기연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의 최대 열매 가운데 하나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최근 몇년간 착실히 축소되어왔다. 2012년 선거에서의 대대적인 관권개입과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대부분 흐지부지되었고, 수사기관의 독립성, 관료조직의 중립성, 언론의 공정성 등 재발방지 장치들이 하나같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의사를 직접 표시할 기회는 극도로 억압되었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은 일반적으로 '정권심판'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한다.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피로감, 반복되는 실정, 그리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피폐화되고 있는 시민들의 삶 등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정권심판론'이 부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재는 '정권심판'이 아니라 '정치권심판' 프레임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조짐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김무성 대표 등 국정화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이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를 모두 '반(反)대한민국 사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국정화의 이유로, '국론분열 방지와 국민통합'을 국정화의 최종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데에서 이들의 진정한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대한민국과 반대한민국이라는 대립구도로 우리 사회를 구분하고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민주-반민주' 혹은 '진보-보수(혹은 수구)' 같은 대결구도를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 이를 통해 비판세력을 반국가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정치적 생존권까지 박탈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