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신고리 5·6호기건설과 수능비율 확대를 결론내렸다.
민주당 내부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원래부터 옳지 않은 것이었다
'촛불시민'으로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종종 '촛불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나오지 못한 시민들'이라고 구분해서 썼다. 마음은 같았지만, 누군가는 광장에서 해방과 시민됨을 느꼈고, 누군가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자폐'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앞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원래의 뜻과는 다른 비유적 표현인데다가, 디스패치라는 언론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도했다는 황교익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현상을 자폐에 비유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황교익의 말대로 그것이 어떤 병리적 현상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특정 질병, 특히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혁명은 아름답고 승리는 달콤하지만, 그 열매가 곧바로 시민들의 손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역사는 말해 준다. 젊은 학생들의 목숨과 바꾸어 독재자를 몰아낸 4·19 이후 박정희의 쿠데타가 일어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80년 광주에서 우리는 군부독재의 연장을 막기 위한 유례없는 민주화의 열망과 희생을 목도했으나, 그들은 전두환의 집권을 막지 못했다. 87년 민주화의 결말은 노태우 정부의 출범과 3당 합당이었다. 시민들은 늘 광장에서 승리하고 일상에서 패배해왔다. 광장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했으나, 일상에서 우리는 억눌리고 소외되었다. 그토록 많았던 광장의 동료 시민들은 내 삶의 일상에서 보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성실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였거나, 탄핵될 만한 수준으로 어긴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실이라고 하는 개념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탄핵 소추의 직접적인 판단 대상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백히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의무임에도 법적인 판단이 될 수 없는 성실의 의무를 판단할 주체가 법원이 아니라 다른 주체, 곧 헌법 1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이 판결문은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 모델'의 일사분란함, 획일성을 벗어나 개인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들이 발현되고, 사회의 활력을 만드는 창조적 실험들이 이뤄지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힘을 합칠 수 있는 사회가 2016년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 사회의 상이라는 설명이다. 이 새로운 모델 하에서 개인들이 지향하는 것은 더 이상 성장이나 생존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는 적정한 소득을 버는 한편으로 가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균형 있게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