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상이다.
물론 외국에서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이 국가 정책에 쓴소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캐묻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던 현장은 거대한 역사적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고, 단종·낙태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은 40여 년간 단종·낙태를 비롯한 끔찍한 인권유린에 침묵했다. 그 모순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수십 년을 살았을까. 그들의 개인적 선함과 국가 차원에서 그들에게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추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