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보의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보수를 향하여 대연정을 주장한 데 대해 국민은 높은 평가를 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의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이미 연정을 통해 경기도정을 이끈 데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우위를 점한 한 진영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진영에게 진심어린 손길을 내미는 것은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여는 첩경일 것이다.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서 집권에 성공을 거둔 한 진영이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대연정이 요구되는 바가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시민대중의 일상생활이 평안하고 안락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시스템의 기본목표에 속한다. 시민대중으로 하여금 한겨울에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와 추위와 불편을 감내하며 촛불을 밝히고 토론을 펼치자고 하는 것은 주객전도 내지 가치계서 도착倒錯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치개혁은 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수단-방법이지 목표가 아니다. 시민대중의 지혜와 노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하려는 태도는 비겁한 일이다. 포퓰리즘을 넘어 벌가리즘에 해당한다 하겠다.
뒷모습만은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 될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구차하고 몰골사나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시간을 길게 끌수록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형사범으로 수사 받는 수모를 피해갈 수 없을 터이다. 촛불을 들어 우리 사회를 건지고자 광장과 거리에서 목이 쉬도록 외치는 주권자 시민들의 삶을 계속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여러 달에 걸쳐 지루한 공방을 벌인 뒤 설사 헌법재판소가 2018년 2월까지의 임기를 살려놓는다고 해서 대통령이었던 인물의 실추된 명예가 되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지금껏 역대 선거에서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한 정책안과 미래비전을 내세우지 않은 후보나 정당은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예외가 있긴 했지만 번번이 립 서비스로 끝났다. 후보와 정당의 진정한 목소리가 아니라 빌려온 것이었고, 당선 이후 오리발을 내밀었다. 진보당에서 한겨레당, 민중당, 국민승리21로 이어지는 범진보 혁신정당에서 애써 기획하고 정리한 내용을 베껴서 변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까운 예로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의 담론이 그렇다.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8월동안 유력정당 둘이 전당대회를 통해 비대위체제를 벗어나 정상적인 당권질서를 회복했다. 한데 묘하게도 여당과 야당이 서로 쌍둥이마냥 닮은꼴이 돼버렸다. 새누리당이 대표와 최고위원을 친박 일색으로 채우는 비상식적 구도로 비대위를 벗어나더니, 그 후 스무 날도 채 되기 전에 더민주당도 친문 일색으로 지도부를 채우는 당권구조를 갖추었다.
대통령선거만을 놓고 보자. 2002년 제16대 선거를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더 좋은 후보'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는가? 이 땅의 선거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덜 나쁜 후보'를 골라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유력정당이나 후보들 가운데 진정으로 서민의 삶을 향상시킬 의지와 능력, 그리고 국가사회를 바로세우고 민족역사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품성을 지니고 비전을 펼쳐낸 경우가 있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총선에서 이겨야 대선에서 이긴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유권자 대중의 근본적인 건강성을 믿는다. 역대 선거들을 차근차근 살피면 알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서, 4.13총선에서 이기는 쪽이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