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먼저 구상을 시작한 영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의 꿈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진심이 되레 사랑을 무너뜨린다. 본래의 진심은 속절없을 뿐이다. 〈라라랜드〉의 결말이 가슴을 저미는 건 그래서다. 우연히 들어선 클럽에서 오래전 자신이 응원하던 꿈의 징표를 보게 된 미아의 얼굴에서, 클럽의 무대에 올라 객석에 앉아 있는 미아를 발견하고 잠시 말문을 잊게 되는 세바스찬의 얼굴에서 지나간 계절이 떠오른다.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별에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되돌리지 못해 있는 힘껏 자책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헤어지는 건 '그냥' 헤어지는 거다. 만약에, 를 여러 번 곱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 는 슬픈 것이다. 당신이 〈라라랜드〉에 무너져내렸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보통 부조리한 세상과 이상을 좇는 개인을 연결할 통로가 되어준답시고 대단한 현자처럼 구는 사람들은 무슨 굉장한 진리를 설명하듯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너 힘들고 좆같은 거 알아, 그런데 이게 세상이야, 나라고 나쁜 사람 되고 싶어서 이러겠니? 니 눈에는 한심한 어른으로 비쳐지겠지, 하하하(고개를 약간 기울인 쓴웃음).... 너는 잘될 거야, 일단 영리하게 굴자." 소년은 그런 플래쳐의 논리, 앞선 세대의 노하우, '세상의 태도'와 타협하지 않는다.
2012년 <엘에이 타임즈>가 폭로하기 전까지 업계 비밀이었던 아카데미 투표인단 구성은 다음과 같다. 90퍼센트가 백인, 77퍼센트가 남자, 60대 이상이 85퍼센트 이상이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60대 백인 할아버지가 선호하는 영화들이 그해 미국 영화계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된다. 백인 중심의 남자 중심인 오스카가 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리고 여기, 백색의 오스카가 시대에 발 맞추기 위해 좀더 주목을 했어야 할 두 영화가 있다. <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Beasts of No Nation >과 < 탠저린 Tangerine >이 그 영화들이다.
여러분에게 '판타스틱4'에 관련된 어마어마한 이야기 두 가지를 들려주겠다. 첫 번째. 극 초반 소년 리드가 공간이동 기계를 발명하고 있던 창고는, '백 투 더 퓨처2'에서 비프가 자기 차를 주차해놓고 쓰던 차고와 같은 곳이다! 소오름! 두 번째. 앞선 첫 번째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면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 같은 영화에 대해 더이상 언급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이다. 소오름!
플래처는 좋은 연주가 어떤 것인지 알지만 스스로는 할 수는 없는, 그럼에도 그것에 도달하고자 몸과 마음을 내던진 상태에 있는 연주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 연습에 대한 집착, 과정에 대한 순결성, 재능에 대한 불안, 무대에 대한 공포, 결과에 대한 불만, 평가에 대한 불안, 그리고 위대한 선배 연주자에 대한 존경과 질시, 신화에의 동경 등이 뒤섞여 온갖 형태로 표출되는 존재다.
형. 저 재능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대답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재능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말하는 거다.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서야 재능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반대로 재능이 있다는 건,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비교적은 적다는 걸 말해. 알겠냐? 건방떨지 말고 연습이나 해라. 재능 같은 건 아직 니가 입에 올릴 말이 아니다."
사실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무협 영화다. 제자를 고수로 만들기 위해 정신적인 압박은 물론 신체적 위협을 가할 정도로 악마적인 스승이 등장한다. 아버지 외에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버릴 정도로 달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찬 도전자가 주인공이다. 선생은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인지 혹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치사할 정도로 집요하게 제자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경쟁자들을 심어 과잉된 연습을 하게 만들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버리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