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7년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그는 '사퇴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건 결과보다 대화 자체다.
"국가가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한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사가 제출한 왜곡된 책 요약(악의적인 독해)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아래에 인용해 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책의 취지를 충분히 살펴 요약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가장 신경을 써서 독자의 오해가 없도록 쓴 부분에 관해 재판부는 검사가 멋대로 왜곡한 요약을 가져와 내가 한 말처럼 왜곡했다.
위안부의 아이돌화라는 말로 내가 우려했던 건 위안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앞에 서면 설수록 다른 한편으로 진짜 위안부와 멀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나는 나는 우려했다. 달리 말하면 너무나 가볍게 소비하면서, 아무도 그 안의 진실을 제대로 보려고는 하지 않는.
신임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양국이 성숙한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 과거사 문제 등 여러 현안들이 방해되지 않도록 역사를 직시하면서 이런 과제들을 진지하게 다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직시하자'는 문대통령의 인식은 정말 오랜만에 이 역사철학이 뚜렷한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을 뜻한다. 정말 반갑다. 좋은 대통령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제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시도한 일은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말했으나 잊혔던 목소리를 그저 복원하고, 세상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내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목소리만이 진짜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둘러싼 일임에도 위안부문제가 당사자의 일부를 점점 제쳐놓고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게 된 분들의 목소리도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간의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 오로지 그것뿐이었습니다.
나의 책이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협력이나 자발성 자체를 강조해야 했기에 이번 공판은 특별히 마음이 무거운 자리였다. 나의 책은 그런 것을 강조하는 일 자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공방이란 책의 취지를 협애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물론 그것은 내가 시작한 사태는 아니다.
이 책은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단체를 비판한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고발된 이유다. 실제로 100곳 이상 지적된 곳 중 반 가까이가 정대협을 비판한 부분이다. 실제로, 가처분 재판에서 지적된 곳 중 3분의 1만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결방식을 20년 이상 주장해왔고 다른 방식도 있지 않을까라고 문제제기한 책을 고발한 것이다.
모든 학문은 사실 늘 가설일 뿐이다. 나의 책은 과거 20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정착된 '상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 생각한 '나의 진실'일 뿐이다. 공감해 주는 이들이 있을 경우 그 진실 공간이 넓어질 뿐. 검찰은 '가설'로서의 학술서에 대해 '사실'을 적시했다는 전제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설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내가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본적인 모순, 근본적인 뒤틀림. 학술서를 둘러싼 법정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내가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할 생각이었다면 왜 직설적으로 쓰지 않았겠는가? 원고와 검찰은 보이는 대로, 쓰여 있는 대로 읽지 않고, 의도를 의심하면서 상상을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왜 쓰여있지 않은 내용을 굳이 읽으려 하는가? 비판자들이 말하는 '정치적 의도'를 먼저 읽어내면서 그것을 위한 기술이라는 의심을 한 결과일 터인데, 그건 과거에 사상범을 잡아내면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자백하도록 만든 태도와 똑같지 않은가?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을 둘러싼, 기존의 관계자들과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생각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 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 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일관계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위안부문제를 일단 정상회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를 설치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은 중재위원회 그 자체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양국간의 새로운 분쟁을 초래한다. 또 일단 중재위원회 설치가 제안되면 위안부문제 이외의 문제도 거의 확실하게 논의 대상으로 책상 위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