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미네 야스마사 일본대사를 불렀다
88서울패럴림픽이 호주에서 개최될 뻔했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소녀상'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현재 베를린의 도시 중심부에 나치독일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비들이 세워져 있듯이, 위안부 관련 '소녀상'은 서울이나 부산이 아니라 도쿄나 오사카에 세워져 있는 게 마땅하고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형의 행방을 찾았던 "동생"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광복부터 무려 40년이 지난 1985년. 그러나 "동생"이 마주한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었다. 물론, 그 중 하나는 제2차대전 이전 한반도 "청구권"에 관한 모든 문제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조약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완고한 자세였다. 그러나 냉담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었다. 70년에 걸쳐 형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하며 활동해온 "동생"이 유일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친일파 인정"일 뿐이었다. "동생"은 말한다. "적어도 특공 전사라는 인정을 일본 정부가 취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형의 부담이 가벼워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