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 회담과 상견례에 가까운 만남에 그친 이번 정상회담.
"그동안 검찰은 지배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왔다."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최근 문 대통령의 파격적인 모습은 한국 정치의 병폐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권위주의 청와대, 군림하는 청와대의 상징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통령 이외의 사람의 청와대 내 이름표 패용'이다. 나는 이것은 대통령 의지로 금세 고칠 수 있다고 본다. 왜 누구나 다 아는 비서진, 각료 등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이름표를 달아야 하나? 이것은 미국, 일본 등 어느 민주국가에도 없는 관행이다. 빨리 개선하길 기대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포퓰리즘도 필요하고, 제도화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이 단지 포퓰리즘에 머물지 말고 제도화를 견인한고 압박하는 노릇을 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제도화가 주가 되고 포퓰리즘은 종이 되며, 제도화가 목적이고 포퓰리즘이 수단이 되야 한다는 말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어도 사회 공기기 엄청나게 바뀐다는 걸 실감하는 나날이지만, 지도자 한 사람만 바뀌고 그 사회를 조직, 운영하는 체계가 그대로 잔존한다면 진정한 사회의 진전을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걸 잘 관찰할 수 있는 역사적인 지점에 서 있다.
조만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보내고, 이들 나라와의 정상회담도 서두를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특사를 빨리 보내고 정상회담을 빨리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정상을 만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 정책, 철학을 정비하는 것이다. 정리된 우리 생각 없이 빨리 만나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상대의 생각과 의도에 말려들 가능성만 커진다. '선 전략, 정책 정비 후 정상회담, 특사파견'의 순서가 맞다.
촛불혁명을 이끈 것은 인내와 자제력을 가지고 거리에서 압력을 가해온 시민의 공이지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들이 엄동설한에 고생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시민의 요구와 괴리되어 있는 지금의 정당·의회·선거제도는 꼭 개혁돼야 한다. 상향식 공천, 비례대표제의 확대, 중·대선거구제의 도입뿐 아니라 정보기술혁명과 함께 실현 가능성이 커진 국민소환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강화가 정치개혁의 핵심 목록에 올라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부패한 권력자를 내쫓는 데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부패한 권력자가 나오지 않는 토양 만들기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사드 배치의 찬반 논의가 정확하게 이뤄지려면, 이제라도 한반도 사드 배치의 직접적인 보호 대상이 한국 국민이 아니라 오키나와, 괌에 있는 미군과 그 기지이고, 중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는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 북극성과 김정남 때문이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의 이익과 미군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당당하게 밝히고, 국민의 의견을 듣고 치열한 논의를 벌여야 한다.
이제 트럼프의 선거 때 막말을 두고 유세 때와 당선 뒤는 다를 것이라든가, 미국은 제도화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므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정신승리법'적인 전망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트럼프가 앞으로 얼마나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는 당분간 미치광이 트럼프, 깡패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의 흥망사를 보면, 포용·개방적일 때 흥했고, 배제·폐쇄적일 때 망했다. 결국 미국도 그런 역사의 법칙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 외교가 새해 벽두부터 사면초가에 몰렸다. 전혀 머릿속에 상정조차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의 등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던 차에,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아래위에서 소녀상과 사드 문제로 쌍포 공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도와줄 친구 나라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고립무원, 그렇다고 이 위기를 주체적으로 돌파할 내적 능력도 없는 참담한 상황이다. 내우외환이요, 절체절명의 위기다.
검사 출신 수석비서관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사정기관을 지휘·통제하면서 감시와 협박, 보복을 일삼아온 민정수석실의 전횡과, 먼지떨이 방식으로 주문형 죄를 만들어내며 권력의 입맛에 맞춰온 검찰의 칼춤이 없었어도 재벌 총수가, 고위 공직자가 그렇게 순종적으로 대통령과 그 측근의 무리한 요구를 따랐을까.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을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고, 검찰의 무소불위를 제어하는 제도 개선은 개헌에 비해 하기는 쉽고 효과는 매우 크다.
그런 중죄인을 둘러싸고 있는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과 한광옥 비서실장을 필두로 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비겁한 처신은 꼭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해도 옆에서 그를 보좌해온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왔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 등 외치만 맡겠다고 흘리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할 수도 없고 내치가 받쳐주지 않는 외치는 무력할뿐더러,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할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대응 등 내치보다 외치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내치에 실패하면 국민이 일시적인 고통을 받는 데 그치지만, 외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단순명쾌한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한국 안의 트럼프 현상이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럼프의 어법을 빌려 표현하자면 "미국의 트럼프는 아직 말뿐이지만, 한국의 트럼프 현상은 지금 현실에서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미국의 트럼프는 자승자박적인 행동으로 점차 당선 가능성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트럼프보다 한국의 트럼프가 더 '명백하고 현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르, 케이스포츠재단 출연 미스터리 말고도 요즘 불가사의한 일들이 너무도 많다. 검찰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청와대가 이 특감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하자 갑자기 사표를 수리한 것은 무슨 꿍꿍이이며, 이 특감과 세트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직은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대통령 말마따나 지금이 안팎 양면의 비상시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한 것은 그 상당 부분이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아무리 북핵과 미사일 도발을 염두에 둔 자위적, 방어적 조치이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설명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세력 균형을 흔드는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도전에 한국이 가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드 문제를 전술적 대응으로 보는 한국과 전략적 행위로 바라보는 중·러 간의 이런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정상들이 한두번 얼굴을 맞댄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 일고 있는 '사드 배치 찬반과 국익 논쟁'은 우리 사회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일부 보수언론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학자와 전직 관리가 중국 매체에 기고나 인터뷰를 한 것을 문제 삼아 '매국'이니 '사대주의'니 하면서 불을 지피고 새누리당이 가세하는 형태로 논란이 시작되었다. 뒤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6명이 중국 쪽 학자 등과 사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동이 더욱 커졌고,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통령까지 가세해 야당 의원들이 중국에 동조하는 비애국적 행위를 하는 양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