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출연한 변호사는 "실제 소송으로 비화되는 사건"이라고 전했다.
5개월째 성매매 금지로 직격탄을 맞았다.
"동성애자 괜찮지. 난 존중해. 내 가족이나 친한 애들만 아니면 되지 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 저 짧은 한 줄의 말 안에 수많은 혐오와 존재 부정이 모두 들어 있다. 인정은 해. 근데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은 안 돼. 이 말은 즉,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되며, 나와 연관이 있을 수도 없는 남의 일이고, 지금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배려 없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저 말은 실제 나와 가까운 성 소수자 친구들이 가장 많이 상처받았다고 했던 말들 중 하나이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이와 여성은 절대 동병상련의 관계만이 아니며, 어떤 면에선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까지 가지고 있다. 어떤 게이의 혀 끝에선 천박한 여성혐오가 신랄하게 쏟아져 나오며, 특정 페미니즘은 게이를 '여성 혐오의 최종적 화신'으로 본다. 물론 저들이 주류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 얘기를 꺼낸 것은, 저들이 그저 un-pc한 존재로만 낙인 찍혀 담론의 뚜껑 자체가 닫힌 건 아닌지 좀 아쉬운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거하기 전, 우리는 자주 모텔에 갔다. 섹스할 곳이 없었으니까. 모텔은 비싸서 DVD방에서 황급히 일을 치르기도 했다. 어느 날 섹스 후 그가 말했다. "우리, 이제 너무 자주 모텔에 오지 말자." "응. 왜요?"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어. 혁명한다는 애가 여자랑 이런 데를 와? 하고 말이야." 수긍했다. 모텔에서 나오는 길에 아는 사람과 마주칠 때 민망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말이 왠지 거북했다. 나는 그저 '여자'이고 우리가 교감하는 이곳은 '이런 데'일 뿐인가.
그리고 여기 21세기의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발견한다. 뉴욕에 사는 그녀는 서울에 사는 그 남자를 내일의 남자라고 불렀다. 두 도시에는 14시간의 시간차가 존재했고 대체로 그녀가 그를 떠올리는 저녁이면 그의 시각은 다음날의 아침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어제의 여자였다. 달력상으로는. 페이스북을 채우는 수많은 얼굴들 중에서 왜 그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터넷상에 올라온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나는 벤담의 공리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도덕이나 설익은 정의를 외치기보다는 개인의 구체적인 행복을 말하는 것이 정치의 도리라는 데는 동의한다. 행복이 추상적이면, 권력자의 도덕이나 정의 타령과 다를 바 없다. 행복은 벤담의 '침대의 기록'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루쉰의 희망은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는다. 절망과의 끊임없는 싸움일 뿐이다. 따라서 희망이란 싸우는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아마도 새해가 희망인 것은 또 다른 싸움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의 아내에게 친구들이 걱정을 늘어놓았다. "당신 남편은 천하의 대학자인데 부부 생활은 제대로 하는가"라고 은근히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인즉 공자 같은 저명한 학자는 책만 보고 공부만 하지 어디 부부 생활 따위를 하겠는가, 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공자의 부인은 즉각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이 사람들아. 공자가 어디 배꼽 위의 공자이지 배꼽 아래의 공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