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통령실에는 대통령에게 직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앞서 네이버는 어뷰징을 탓하며 이벤트를 3일 만에 종료시켜버렸다.
줬다 뺏은 느낌...?
반품받은 걸 왜 새제품으로 파나요?
실검 서비스는 16년 만에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설리 1주기, 연예 담당 기자들의 고백
언론이 소모적 논쟁을 키워 건설적 비판의 기회를 날린 또 하나의 사례다.
22일 하루 동안 엄청나게 퍼졌다
”인터폴 적색수사는 강력 범죄자에 내려지는 것으로 저에게는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법당국에서 댓글관리 책임에 대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시간은 흘렀고 MBC 정상화의 길이 열렸다. 그동안 파업 철회로 방송장악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내 친구는 오늘도 너무나 당연하게 곳곳에서 까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배현진은 MBC가 아니라 이런 언론 어뷰징의 아이콘으로 보인다. 특히 양치질 사건을 보고 피구 사건을 보면서 더더욱 느낀다.
유명인의 삶과 연결될 땐, 이는 가십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본인은 밝힌 적도 없는데 언론이 전문가 발언을 더 해 기사로 다루면, 그것은 신뢰까지 얻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통된다. 현재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박근혜의 심리·정신적 상태를 분석한 기사들이 대표적인 예다. 전문가가 어떻게 단 한 번의 대면조차 없이 이토록 쉽게 '진단'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진단이 옳다고 한들 이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윤리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티셔츠가 예뻐서 샀든 해당 펀딩의 취지에 동의해서 샀든, 아니면 정말로 '메갈리아'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샀든 상관이 없다. 티셔츠 구매의 모든 이유들이 '메갈'로 등치되고 있다. 이 티를 입은 자들이 말하는 모든 언어가 메갈의 것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페미니즘적 언어도 '메갈'이라 비난받을 수 있다. 비난하는 자들은 손쉬운 낙인을 택했다. 이제 벗어나기 위한 해명은 낙인 받은 자들의 몫이다. 이제 누구라도 메갈이 될 수 있다. 과거 누구라도 김치녀가 될 수 있었듯. 어떤 성범죄 피해자라도 꽃뱀이 될 수 있었듯.
온라인 상에서의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를 이용한 프로파일링에 대하여 사람들이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나'와 '온라인에서의 나', 그리고 각 플랫폼 서비스들이 빅데이터 수집 결과를 모아서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특정 플랫폼에서의 나'가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추단된 나'가 '실제의 나'가 아님을 내가 직접 스스로 설명하거나 부인하여야 하는 상황이 곧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소셜커머스 업체는 나를 축구 팬이라 오해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은 내가 된장찌개나 맥주보다 파스타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잘못 분류하고 있다.
"물론 여정이라는 것은 없다는 게 진실이다. 우리는 동시에 도착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보위의 말이다. 누군가 어딘가에 멈춰 있다가 떠나는 것을 우리는 변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변화는 좀 다르다. 보위는 언제나 도착하는 동시에 떠났다. 멈춰 있던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