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퇴거 처분과 난민 불허에 반대하는 소송을 별도로 제기했다.
미국이 빠져나간 후, 러시아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틀 사이 세 번째 사진이 나왔다. 트뤼도 총리는 이틀 연속으로 사과했다.
함께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4월 선거를 노린 행보다
정치가 품격을 잃어가는 시대, 다시 봐도 좋은 명장면.
패배하면 조그마한 골과 사소한 틈이 커져 분노와 증오를 뿜어낸다
가장 문제가 큰 잘못된 믿음들이다.
역설적으로, 투표 때문에 일어난 '재앙'은 현 상태를 뒤흔들어 바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수도 있다. 미국이 지원한다면 쿠르드족이 오랫동안 꿈꿔온 독립 국가가 가능해질 수도 있으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두바이 경제의 최우선 과제는 석유 이후의 두바이 경제였다. 정신 나간 지도자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 취미 생활로 메이단 경마장을 건설하고 두바이 월드컵을 개최했을까? 혹시 두바이의 연간 13% 고도성장에 메이단 경마장과 두바이월드컵이 꼭 팔요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셰이크 모하메드가 두바이 월드컵을 경제성장의 전략으로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14살 소녀의 피 흘린 사진 없이도 소녀가 얼마나 아팠을지, 그런 사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아파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봐야만 아픈 건, 아직 덜 아픈 거다. "가해자들의 인권을 왜 두둔해?" "가해자들에게도 인권이 있어?" 곧 논쟁은 인권단체에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주 익숙한 레파토리이기 때문에 기시감마저 든다. 그럴 때 죽어도 외칠 수밖에.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우리가 맞겠지.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에 몇 만이 순식간에 서명을 했다. 복수심과 분노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인권을 빼앗자며 얼굴을 노출시켰다. 역시 보복일 테다.
"세상에, 넌 정말 친절하구나."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나.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 이제 내가 너에게 그 친절을 돌려주는 거야. 그러니 하나, 너도 여행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네가 받은 친절을 그 사람에게 돌려줘." 우리는 포옹하고 헤어졌다. 나는 공항 환전소에서 극적으로 여권을 되찾았고 그날 밤 늦게 숙소로 되돌아갔지만 두 번 다시 그 청년을 보지 못했다.
시리아는 6년째 학살당하고 있다. 외발의 새들에게서 나는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위태하게 서있는 그들이 마음 놓고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날은 언제일까. 외발로 선 21세기 디아스포라, 그들의 이름은 시리아다. 세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에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우리의 특권이 제3세계를 착취한 결과는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시리아 평화를 위한 캠페인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계속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만들어간 시민의 힘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