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맨얼굴이다. 한두명을 제외하고, 지미집 카메라로 담은 무대 위 지보이스 단원들의 얼굴엔 블러도 모자이크도 없다. 서른 명이 넘는 게이들의 얼굴이 이렇게 한꺼번에, 아무 위장이 안된 채로 스크린에 담긴 적은 처음이다. 저 각각의 얼굴들은 곧, 그 한 사람이 촬영동의서를 쓸 때의 고민과 두려움과 결단의 무게에 값한다. 이들은 어째서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관객층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 매해 지보이스 정기공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계급만 있고 혁명만 생각하고 민족만 그리고 있으면 그 현장에 따뜻한 그림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든 시간, 외로운 시간, 두려운 시간을 견딜 힘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준 따뜻한 그림자가 많았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등 성직자님들이 투사가 되어 주셨고, 한진으로 달려간 희망버스가 평택으로, 대한문으로 찾아와 주셨지요. 송전탑에서 긴긴 겨울 밤을 보낼 때 시인들이 낭송해주신 시 한 편 한 편은 차디찬 바닥에 온돌이 되어 주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한위원장님을 처음 뵌 건 쌍용 옥쇄파업을 다룬 태준식 감독님의 '당신과 나의 전쟁'에서 입니다. 당시에도 여전한 편견은 위원장은 너무나 강직한 사람이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부대낄 수밖에 없는 '투쟁의 결단'을 내리는 사람으로만 비쳤습니다. 하지만 쌍차 파업이 길어지고 위원장님이 구속되고, 석방 이후 다시금 철탑에서 벌인 고공농성과 그 뒤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시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런 강직함이 결코 과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