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나지 않던 국정원의 존재가 대법원장 사찰문건 공개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삐죽 튀어나온 셈이다. 총체적 국기문란 사태에서 국정원이 빠지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2014년 1월에 작성된 대법원장 사찰문건은 2012년의 대선댓글개입으로 2013년 내내 검찰수사와 국회특위에 시달렸던 국정원이 2014년에도 여전히 안에서는 딴짓을 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2014년 2월28일로 끝난 국회특위의 국정원 개혁안이 과연 국정원의 무분별하고 불법적인 국내정보 수집관행을 바로잡았을지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너무 길어서 희망이 없어. 싸워서 이길 수가 없어." 최 경위가 죽기 전 형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나는 최 경위가 형에게 남긴 말이 대통령 탄핵의 이유가 된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을 꿰뚫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바로 그거였다. 남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권 출범 당시부터 박근혜 정권에 내장돼 있던 '박근혜 게이트'에 대해 언론과 검찰이 그간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던 이유도 남은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언론과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열심히 파헤친 것도 임기 말이었기 때문이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검찰의 대통령조사방침을 접하면서 과거 박지원대변인의 명언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다. 박근혜의 검찰이 사상최초로 현직대통령을 조사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정치검찰이 국민검찰로 바뀌지 않는다. 국정원댓글개입 수사, 십상시 수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 숱한 대형국면마다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며 국민이 준 검찰권을 남용해온 부역죄가 덜어지지 않는다. 만약 지난 1주 동안 광장참여가 떨어지고 정권지지가 반등했다고 가정해보라. 검찰조사결과는 보나마나 '역시나'였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이 순간, 정치공학을 따져가며 시간을 끄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것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당신들은 절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우파'가 아님을. '우파'라면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서 우파의 이름 하에 사리사욕을 채운 자들에게 죗값을 확실히 물어야 한다. '원칙'과 '진실'을 외면한 '봉건 정권'의 과오를 정리하지 않고 돌아오는 대선을 이겨봤자, 그것은 또 다른 '봉건 정권'의 연장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대선에서 우파진영이 패배한다 하여도, '진실'을 마주하고 '원칙'을 지키며 얻은 패배가 다시 찾아올 '떳떳한 승리'의 밑거름이 될 '값진 패배'라고 믿는다.
최씨의 PC에는 생소한 '오방낭'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있습니다. 다소 생소한 단어인데, 오방낭은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부적 등을 넣었던 주머니를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복주머니'라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희망복주머니의 다른 말이 '오방낭'입니다. 최씨의 PC에 오방낭이라는 파일이 있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에 최순실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들게 합니다.
깨알지침과 받아적기로 요약할 수 있는 국무회의는 의심할 것 없이 완전통제형 구조입니다. 국무위원들을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관이나 된 사람들이 받아쓰기 할 정도의 능력밖에 없냐, 다들 박근혜의 사람이냐는 지적입니다. 이들 지적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권한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똑똑한 하급자들은 관료주의를 선택합니다. 상급자에게 의도적으로 혼란스런 정보를 제공하고 무사안일을 추구합니다. 이들이 무능해 보이는 것은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국정화가 옳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절대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여당 인사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거짓말로 여론을 조작하려 들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황교안 총리가 국정화에 즈음한 대국민 담화에서 기존 역사교과서의 문제로 든 대목부터 왜곡투성이다.
홍봉한은 정작 사도세자가 죄인으로 죽고나서 그 아들인 세손 정조의 왕위계승도 위태로워졌을 때 외손자인 세손을 구출하기 위해서 나선 걸 보면 괜시리 홍봉한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딸을 과부로 만들고 외손자가 아비 없이 커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ㅠㅠ 과부조차도 개가(改嫁)를 못하는 성리학 탈레반 사대부가 지배계급인 조선시대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자빈이 세자 사후 개가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구하려고 나섰다간 집안이 망했을 거고 그 잘난 사위 따라다니다가 소속 당파가 폭싹 망할 지경이었으니;; 홍봉한 이 양반 눈물을 머금고 사위를 버리고 딸하고 외손자랑 집안을 구하는 대규모 사석(捨石) 작전을 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