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만을 생각했던???
중국발 문화 동북공정이 도를 넘었다.
우리는 100년 전 '센 조선 녀자' 언니들의 위트를 물려받았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다.
아무리 친일파의 연구라도 맞는 부분은 취하고, 아무리 독립운동가의 연구라도 비판받을 부분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학문의 세계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논쟁의 본질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미 70년이 넘어선 일제 식민지 청산의 관건은 결국 "한국인들의 자신감 회복"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한 우리가 왜 이렇게 고대사의 사이즈에 집착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글을 통해 고백하는데, 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면서도 대선 투표에서 박근혜를 찍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후보의 검증 책임까지 맡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집권을 하면 나라가 어찌될까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관계가 드러나면 온 국민이 경악할 것이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얘기했겠는가. 불행히도 이 정권은 내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고, 우리는 이제 효용가치가 사라진 중국발(發) 기자(箕子)를 대신할 시조로서 단군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군은 중국적인 커넥션이 없는 존재로서,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추존된 민족의 새 시조였던 것이다. 단군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리고 기자보다 훨씬 오래된 유일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단군을 자신의 시조로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불과 백여 년 전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한 창조의 결과일 뿐이다.
필자는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와는 안병직 교수 아래에서 동문수학했다. 2005년경부터 시작된 이영훈 교수의 역사 교과서 비판은 지금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진원(震源)이다. 근원을 파헤치지 않으면 잘못을 바로잡기 힘들다는 마음에서 스승과 선배를 정면 비판하는 부담을 감수하고자 한다.
이번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및 선제 포격으로 여실히 드러났듯이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이다. 그런데 중국의 소위 인민해방군은 6.25 때인 1950년 10월경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위장된 명칭으로(즉 마치 중국인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독재정권을 돕겠다는 자들만이 모인 것인양 이름을 붙였으나 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인 인민해방군 부대들이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구호 아래 우리 대한민국의 동맹군이 미군 및 우리 국군이 포함된 유엔군에 맞서서 북한을 도운 우리의 적군이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중국은 북한과 공식적인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