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임신으로 걱정했던 당시의 김민정.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함께 출연했다.
우리는 정이라는 이름으로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정적인 청탁을 용인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머니들이 보내주시는 작은 감사의 표현들도 아이들이 준비한 정성의 선물들 또한 대부분은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교사된 입장으로 솔직히 말하건대 표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대상에게 완벽히 냉정하게 공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여러 명이 한데 공부하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교사의 관심이 한 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운다는 것, 주관적 평가 항목들에서 개인적인 정이 작용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겐 불공정한 피해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모르는 것은 학습으로 채워질 수 있으나 사람을 경멸하는 행동은 사회 문화 차원의 과제다. 그런데 사람을 경멸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다면 나의 재능을 키워낼 수 없다는 경험적 사실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철학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가 내면에 숨어 있다. 교사는 이를 굳게 믿고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키워내야 한다.
과도한 축의금 문화에 대한 반발심에 '나부터 받지 말자!'라고 말하는 이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외침이다. 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의금은 마치 '펀드'와도 같다. 부모님이 수십 년간 납입한 돈의 만기가 결혼식 당일에 도래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그간 쏟아 부은 돈이 만만치 않기에 "저흰 결혼식 간소하게 하겠습니다. 축의금도 안 받겠습니다."라고 말하기란 어렵다. 실제 간소하게 치르는 이가 있기는 하나 그 면면을 보면 대부분 상류층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그 펀드를 폭파하자고 건의하면 의절당할 위험이 있다.
보통의 기념일 같다면 난 분명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텐데 내 생애 한 번도 그 날이 기다려지거나 기뻤던 적은 없다. 그리고 수많은 주인공들과 함께 하는 우리 학교에서도 그날을 서로 축하한다거나 인사의 소재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다닌 나의 기억 속 그날은 영문도 의미도 모른 채 잠실운동장으로 전교생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채워져 있다. 소외 받고 차별 받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그 중 잘 나가는 몇몇을 띄워주기 위해서 그 안에서조차 다시 구별되어지는 잔인한 고통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