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사고 이후 진상규명 등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늦어졌다.
“옛날에 속 썩인 건 다 지난 이야기다. 애증도 미움도 다 사랑” - 임미숙
도면에는 없는 구조물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열흘 전에 보냈다.
새로 이사한 집 위에는 마포대교가 있고, 아래에는 한강이 있다. 나의 방은 반지하인데, 반지하에서 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에는 반지하의 창문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의 불빛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지금 지내는 곳은 창문에서 쇠창살과 회색 담장만 보인다.
어느 국회의원 한 분이 인권의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모든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을 내놓았나 보다. 일반학교의 아이들에게는 못하는 것을 장애아이들에게만 편히 들이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적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청각, 시각, 지체 장애아이들의 극렬한 반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의사표현 못하는 발달장애아들은 맘대로 카메라 달고 지켜봐도 된다는 말인가? 사생활 훤히 드러내고 일거수 일투족을 발가벗긴듯 하루 반나절을 공개해도 장애 아이들은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은 누구의 머리에서 시작된 것인지 궁금하다. 제발 입장 바꿔서 한 번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사실 난 하는 꼴만 봐선 꼴등 남편이다. 결혼 3주년 기념일이 다가오지만, 결혼한 후 뿐만 아니라 같이 산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일 저녁 쓰레기 분리수거도 거의 매주 형이 혼자 하게 되고, 술에 정신을 잃고 새벽에 들어온 날이면 내 옷을 갈아 입히고 침대에 눕히는 것도 형이다. 그런 형에 비하면 난 정말 빵점짜리 남편이다. 내가 형에게 남편 노릇을 잘 못해줘서 미안한 건 단순히 집안일을 형이 더 많이 감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게 부부 생활에 얼마나 큰 부분인지는 누군가와 동거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형에게 미안한 부분이 있다.
계산을 빨리하는것, 바둑을 잘 두는것, 화려한 기술을 가지는 것, 이런 것들이 인간의 본질이고 궁극적 목적이라면 인공지능은 사람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간의 존재의미는 그것보다는 훨씬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동차와 달리기를 해서 이길 수도 없고 총이나 칼보다 강하지도 못하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끔찍한 고통 앞에서 정의를 수호하기도 한다. 우리가 서둘러 해야 할 것은 기계와의 경쟁이나 그것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원래의 것을 찾는 것이다. 나는 알파고 혹은 더 진화한 인공지능의 발전을 환영한다. 그것은 착각 속에 빠진 인간들에게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