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양쪽이 모두 피해자라고 얘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장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장혜영 의원이 피해자가 된 정의당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의견을 전했다
'86세대 교체론'에 대해서도 말했다
중산층 이상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답이 없다
많은 관객들이 영상 속 조문객의 오열을 보며 영화관이라는 장소성을 망각한 채 오열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이 순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애도는 특이하게도 떠나간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분노와 슬픔으로 항의했음에도 억압당해온 가치들과, 선과 정의가 배반당하는 우리의 아픔에 오불관언했던 세력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촛불혁명'은 표면적으로는 정권교체로써 완수된 듯하지만 사실 감정은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두개의 애도가 완수되어야 마음 깊숙이 고인 멜랑꼴리와 결별하고 건강한 정치성을 회복할 수 있다.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두 배 이상 득표했다는 대구경북 지역 출구조사결과가 공개될 때, 60대 이상에서 홍준표 후보가 제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 이 '대구경북노인들'은 한국을 아직 전근대의 영역에 붙들어놓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목당한다. 2000년대 후반이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정치에 관심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세대들을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확정짓는 시기였다면, 놀랍게도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기 전에 화살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우파정권의 변명불가능한 실책만의 소산이 아니며, 그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오던 가치 자체가 이동했음을 함축한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청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에는 감수해야 할 현실이 당장 내일의 불똥이다. 정말 다들 포기하면서도 행복할까? 아니 포기한 것은 맞나? 달관이라고? 사실 우리는 '달리던 관성'으로 가고 있는 세대다. 일단 대학까지는 달렸으니까, 일단 취업 준비는 달리고 있으니까. 옆에 애들 다 뛰고 있으니까. 그저 주어진 경쟁에서 아끼고 조르고 달려서 나부터 살고봐야지. 기성세대가 뭐라 말하든 말든, "어차피 헬조선" 자조나 한 번 날려주고 취업 스터디하러 가야지.
보수의 관점에서 성장의 좋은 점만 강조할 필요도 없고 거꾸로 진보의 관점에서 성장의 나쁜 점만 과장할 필요도 없다. 또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세계로 내포되는 과정이 확대되면서 참여와 기회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불만과 배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사회적 배제가 사회적 통합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내포를 통해 사람들을 사회 내부로 흡수하는 통치 과정은 근대 이후 점점 확대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기회와 동시에 다시 배제와 차별의 위험도 불균등하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