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정말 다행이다, 네가 나한테 실망해서" -앞서 김동완이 쓴 팬 저격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낸 장류진을 만났다
"작은 마을에서 나는 차별과 학대를 당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 했다"
성매매와 성노동 사이
'워마디즘'은 페미니즘인가? 이 질문은 마치 '우생학은 생물학인가?'라는 질문만큼 터무니없게 들린다. 놀랍게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페미니즘 담론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는 성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공간이다. 얼굴 없는 사람이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고맙고 반가운 곳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페이스북 코리아는 이곳을 음란물 페이지로 규정했다. 많은 사람의 항의로 다행히 규제는 풀렸다. 창녀의 추억 따위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으로 나오고, 영화마다 화려한 배경으로 창녀가 등장하는 땅에서 창녀가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음란물이 된다. 성노동자는 스크린 속의 미학이거나 환상 속 악마, 팜파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이 범죄화된 곳에서는 성노동자는 인권침해를 당해도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노동자 인권보호가 실현되기 위해서, 국제앰네스티는 성노동의 비범죄화를 요구합니다. 누군가 왜 이런 논쟁적인 이슈를 지금 내놓는지 묻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이 사안이 '민감하다', '어렵다', '논쟁적이다'며 결정을 미루는 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성노동자들의 삶은 계속해서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들이 여성혐오자들과 똑같이 응수한다고 우려했다. 여성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갤러'들은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살면서 한번쯤 들어왔던 말들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광대가 양반을 놀려대는 것'을 혐오라 할 수 없듯이 차별받아온 그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행 성매매 처벌규정의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강요 없는 성매매는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쪽에서도, 성매매 처벌규정을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정부 쪽과 이 점에서는 동일하다. 성매매는 성매매로 인하여 특정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범죄, 곧 '피해자 없는 범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강요 없는 성매매는 성구매의 상대방에게는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성매매가 성구매행위 상대방의 정신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