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의 대화명은 '꾸기'
이해상충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박근혜 탄핵정국을 이끈 촛불시위는 국가단위 시민 행동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도 지난 촛불시위 때처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정권이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때에도 지난 촛불시위 때처럼 하지 않았다. 때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각자의 생업과 삶에 이러한 의제들은 간단히 저울질됐다. 그렇다면 먹고사니즘 앞에 나약했던 것은 방송국 사람들뿐이었을까. 이제 와 파업한다는 비난이 그들에게만 향하는 게 맞을까. 이 파업의 시기를 결정한 것은 방송사 노조인가 시민사회인가.
후보들의 정책실종 사태는 박근혜 후보 부실검증과정이 초래한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51%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찍이 박근혜-최태민-최순실 관계의 부적절함을 알면서도 미필적 고의로 불량품인 박근혜 후보를 공천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정당의 후보공천과 검증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이 잘못되면, '정부실패'와 '정치실패'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진보의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보수를 향하여 대연정을 주장한 데 대해 국민은 높은 평가를 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의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이미 연정을 통해 경기도정을 이끈 데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우위를 점한 한 진영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진영에게 진심어린 손길을 내미는 것은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여는 첩경일 것이다.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서 집권에 성공을 거둔 한 진영이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대연정이 요구되는 바가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조선 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시험 귀재'들은 '탐관오리'가 되어 사회를 타락시킨 장본인들이었고, 을사보호조약, 한일강제병합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의 작위를 받아 호의호식하였다. 일제 하 고등고시 합격한 조선인 거의 전원은 동포들의 학대하는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시출신 대다수는 반민주 반인권 권력의 마름 역할을 했다. 이게 개인 탓일까, 제도 탓일까? 나는 제도 탓이라 본다.
7년 전 이맘 때 노무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승만보다, 박정희보다, 전두환보다 나쁜 자(?)였다. 검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별 관련도 없는 의혹들을 발표했고, 언론은 연일 노무현 관련 추문들로 지면을 도배했다. 노무현은 아방궁으로 둔갑한 봉하 사저에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물리적으로 완벽히 유폐된 상태였다. 노무현에게 쏟아진 윤리적, 정치적, 사법적 비난은 일찍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정치가 사적욕망들이 각축하는 최종게임이 될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완장들의 활갯짓이다. 변절자로 지목된 조직원은 감옥에서라도 처형해야(execute!) 하는 갱단의 행태가 백주에 공공연히 횡행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베테랑'은 재벌 3세의 일탈을 다루지만, '내부자들'은 특권과두동맹이 얼마나 추악한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대한민국은 '베테랑' 이전에 있다. 일개 형사가 재벌 3세의 악행을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다. '베테랑'이 '부당거래'에 비해 압도적 흥행스코어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악당에 대한 응징이 영화 속에서 실현된 탓이 크다.
최인석의 '강철무지개'를 읽었다. '강철무지개'는 2100년 경의 미래를 다룬 소설이다. '강철무지개'는 정보기술혁명의 과실이 극소수에게 전유되고, 절대 다수의 시민들은 변변한 일자리도 얻지 못한 채 죽지 못해 사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국가는 한없이 무력한 대신, 기업은 사실상 국가로부터 주권을 양도 받아 에너지돔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다스릴 만큼 힘이 세다. 이 소설의 무대는 대한민국이다.
당내외에서는 재신임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당내 대립과 갈등이 더 심화될 거라고 보는 관측들이 있다. 그럼 이대로 있으면 당내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고 문재인을 비롯한 당내 유력인사들 간의 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말인가? 근거 없는 기대다. 재신임 투표를 통해 문재인과 당내 유력인사들 간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이 이기면 문재인을 중심으로 당이 하나가 돼 총선 총력전에 돌입하는 것이고, 문재인이 지면 문재인은 집으로 가면 된다.
엄밀하게 따지만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과도한 선물은 잠정적 뇌물이라는 것이 이 법의 근본 취지다. 법이 시행되면 드러난 직무대가성이 없는 1회 100만원, 연 300만원 이상의 선물도 처벌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문제며 누가 불편해지는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이 법을 반대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소비축소로 인한 경기침체의 우려를 내세우는 반대론자도 있는 듯하다. 실로 통탄할 일이다. 부패에 담합하는 물질만능 세태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서글픈 군상들이다.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