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불문, 매체 불문 활약하는 배우
북한이 외교·대남 라인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부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남았다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체조계가 다 아는 성추행이 무혐의라는 게 말이 되나?"
비극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작년 가을 50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아흔 중반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고향 선산으로 가실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안 갔을지 모른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5년쯤 지난 뒤 할아버지 산소를 고향 선산에 썼다. 그 침묵에 가득 찬 묘비 제막식을 마지막으로 나는 고향에도 선산에도 발을 딛지 않았다.
산불 장면은 사실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게 구현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거대한 무대 뒷벽이 붉은 불길로 일렁이고 진짜 대나무가 가득한 무대로부터 대나무가 불에 타서 쪼개지는 소리가 퍼져나갈 때, 전쟁의 참화(慘火)에 대한 이 재현은 감각적 현실로 육박해온다.
역사는 파괴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연속적인 발전 과정이다. 치욕스런 일제 조선의 역사도 엄연한 한국인의 역사다. 김윤식은 '전천후 세대' 비평가다. 1936년생인 그는 자신 세대의 포로가 아니다. "나 자신의 세대 의식은 없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특정세대이기를 거부하고 객관적 투명성을 미덕으로 삼은 '구경꾼' 내지는 '방관자'의 특권을 극대로 행사한다.
한반도 주민이 핵폭탄과 원전을 모두 끌어안고 위험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분단 상황이 두 가지를 분리시켜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분단으로 인해 남북은 서로 다른 경로를 밟아왔다. 북한은 빨치산 국가에서 출발하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로는 유례없이 폐쇄적인 농성체제가 되었는데 핵은 그런 행로의 끝에 있다. 이에 비해 남한은 세계체제의 분업 구조에 깊이 참여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하지만 활성단층대의 존재를 안 이후에도 추가 원전 건설을 추구해온 것이 보여주듯이, 남한이 이룩한 성과는 엄청난 무모함, 무책임, 그리고 근시안과 결합된 것이었다.
왜 붕괴론은 반복될까? '오보'와 '의도'는 동업자다. 태영호 보도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의 붕괴론 발언과 통일부의 배경설명이 계기였다. 북한 보도의 국내정치적 활용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일부 종편은 거의 하루 종일 북한을 다룬다. 국내 뉴스를 다루어야 할 시간을 북한 보도로 채운다. '관계부처'가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흘리고, 정부가 주문제작한 기사가 양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