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 정치행보 중이다.
이번 정부도 세제 금융상의 혜택을 더 줄테니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세금을 내라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금융소득 등은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모두 세금을 내야한다. 그러나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주택임대소득은 내고 싶은 사람만 내도되는 것이다. 아무리 국민의 꿈이 임대사업자라 해도 이것은 너무하다.
정부는 조세저항을 우려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 세율구간을 조정하는 증세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선 때 문 후보가 내건 공약, 즉 최고소득세율을 42%로 올리겠다는 공약으로부터도 후퇴하게 된 셈입니다. 나는 최고세율 적용구간을 5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내리는 미봉책보다는 아예 아주 높은 소득에 대해 지금보다 더 높은 최고소득세율을 신설하는 정공법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과세표준 10억 이상이라는 새로운 구간을 설정하고 여기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50% 정도로 높이는 방안 말입니다. 일년에 가만히 앉아 몇 백억원씩 버는 재벌이나 부동산 부자들에게 50%의 세율이 부당하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 어떻게 행동했을까?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최후를 맞는 영화 속 선장이 될 수는 없다면, 나보다 승객 목숨을 먼저 생각해 탈출시키는 영웅적 선원이 될 수는 없다면, 최소한 희박한 확률의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 이익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사장이나 직원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조차도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나의 솔직하고 좌절스러운 답이었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먹고사니즘'이다. 안전이나 직업윤리보다는 속도와 회사 이익과 생존이라는 가치에 우선순위가 있다. 이를 거슬러 행동하려면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순응해도 문제는 있다. 운이 없으면 대형사고를 만나 순식간에 악마가 될 수 있다.
문재인의 연설과 유승민의 연설은 같은 달을 가리키는 다른 손가락이다. 하지만 유승민의 손가락이 훨씬 더 곧고, 용기 있게, 그 달을 가리고 있는 구름까지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증세를 피할 수 없다. 적절히 국민의 세 부담을 높히고 그것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문재인은 바로 그 점에서, 국민에게 사실을 사실로 전하고 설득할 용기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부자 뿐 아니라 서민들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래야 복지를 더 할 수 있고, 그 이전에 지금 수준의 복지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유승민은 그 사실을 말했다. 문재인은 진실을 회피하고 있다. 두 연설 전문을 다 읽어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한국 사회는 성 안 사람과 성 밖 사람으로 나뉜다. 한번 성 밖에서 시작하면 성 안 진입은 불가능하다. 같은 능력으로 같은 기여를 해도 대기업 소속이냐 중소기업 소속이냐에 따라 임금이 현저하게 다르다. 시험 한번 잘 봐서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되면 안정된 임금과 연금까지 보장받는데, 정부 일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비영리기관이나 사회적기업 임직원은 현장을 누비며 고생해도 저임금과 불안정성에 시달린다. 한 분야 전문성을 아무리 갈고닦아도 대학교수 자리를 꿰차지 못한다면 낮은 강사료와 연구비를 견뎌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들이 안전한 성벽 안에 숨고 싶어하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