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심상정으로 상징되던 정의당 1세대가 저물었다.
"여전히 소수자를 향해 편견 어린 시선을 보내는 판사, 검사와 마주할 때가 있다"
11월 11일 주권자대회는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는 선언이다. 주권자들이 한 자리에 다시 모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 주도가 아닌, 각자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모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김성태 의원은 총선을 위해 특수학교 부지를 이용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용할 만한 여론이 뒷받침되고 나서야 정의의 사도로 나서려 한다. 잠자코 있던 나경원 의원도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긴급간담회를 연다. 장애 아이 부모로서 마치 이제야 책임감이라도 느끼듯. 삼총사가 욕을 먹는 이유이며, 장애 아이의 부모로서 내가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정당한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사살당한 느낌이 들어서다.
농성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인 2012년 8월 21일부터 시작되었다. 정권이 한 번 바뀌고도 5년을 꽉 채워온 농성 기간 동안, 농성장 한쪽 벽에는 영정사진이 늘어갔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그리고 수용시설 제도 틈바구니에 끼어 불타 죽은 박주영, 송국현, 지현·지우 남매, 그리고 송파 세모녀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아직' 산 사람들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국가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돌아온 것은 5년간의 침묵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광화문 농성 1831일째인 25일, 복지부 장관이 직접 농성장을 찾았다.
지난 19일, 전북 전주에서 한 아버지가 열일곱 살 발달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투신해 숨졌다. 사흘 뒤인 22일, 이번엔 경기도 여주에서 어머니가 스물여덟의 지적장애 1급의 아들을 목 졸라 죽였다. 아들은 지적장애에 뇌병변장애가 있는 중증중복장애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자 병원에 수면제를 사러 갔다. 하지만 병원 처방전이 없어 구매에 실패하면서 결국 경찰에 자수했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죽이는 일, 혹은 '같이 죽자'는 말. 장애인의 삶엔 하나씩 박혀있는 에피소드였다.
보건복지부가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행사를 하는 행사장 바로 바깥에서 정작 장애인들은 내팽개쳐지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복지부 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어느 때보다 경호는 더욱 삼엄했고, 진압은 신속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2016년 4월 16일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에서 제단에 바쳐진 투표확인증을 보았다. 그 투표확인증은 생존학생이 희생된 친구에게 보여주는 다짐이며, 희망이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허락한 것은 그들만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자격이다.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도록 감시하는 주체는 국민이고, 미래의 주인이 될 청소년과 청년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