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상식으로 확인되었다.
밴쿠버의 여성 추모 행진이 올해로 28주년을 맞는다.
국가가 나서서 낙태를 조장 내지는 때로 강요해온 국가폭력의 역사, 그리고 장애를 가진 여성에 대해서는 건강상태와 무관하게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강요해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적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다수의 여성 관련정책들은 여전히 논란 중이며, 그 실행을 위해서는 만만찮은 반대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 한 예가 지난 13일 문재인캠프에서 여성운동가로 알려진 남인순 의원을 여성본부장으로 영입하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환영했던 지지자들 중에서도 성폭력 관련 법안이나 군대 관련 발언 등 남 의원의 전력을 문제 삼은 일이다. 여성표 얼마 얻으려다가 더 많은 표를 잃을 것이라며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운동가 출신을 내각도 아닌 캠프에 합류시킨 것만으로도 논란이 일어날 만큼 지금 한국의 젠더갈등은 첨예하다.
여성혐오에 맞서기 위해 남성들의 여성비하 언어를 그대로 흉내내 되돌려준다는 메갈리아의 전략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운동방식이 문제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메갈리아 역시 이제껏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상당부분 포기하고 감내해온 여성혐오적인 정동에 저항하면서, '어차피' 정서에 균열을 낸 중요한 운동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운동방식의 한계를 비판하기에 급급한 세력들은 오히려 여성혐오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어차피' 존재하는 사회현상으로 간주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삶이 나아지리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다른 불평등은 다 참아도 남녀 사이의 위계가 역전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는 남성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보다 낫다는 위안마저 없으면 현실을 견디기 어려운 남성들과 이미 평등한 존재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들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년부터 강행하겠다는 '시간강사법'은 시행을 위한 구체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아, 이 법이 시간강사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설 강의의 숫자를 줄이고 몇명에게 강의를 몰아주게 되니 오히려 시간강사들의 처지는 더 종속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나마 대학과 1년 단위로 계약하게 될 일부 강사들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하니, 교수니 인문학 연구자니 그런 대접 다 필요없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하라는 요구가 더 적실하게 된 형편이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고 있다. 애초에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한국사회가 지금 여러 면에서 살 만하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러므로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한국사회 자체가 지금보다 다방면에서 훨씬 살 만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사실 획기적인 것을 넘어서 엽기적인 대책을 가져와도 당장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사회 개혁의 문제를 출산율 제고에 연동하다보면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살기 어려워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낳게만 하면 세상이 살기 좋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