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가 조국 후보자의 사퇴를 직접 촉구했다
특수활동으로 쓰인 게 거의 없다
MB정부는 촛불사태 이후 국민통합이 아니라 상대방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촛불사태를 겪고 난 뒤 저 사람들은 화해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 핵심이 노사모이고 친노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본질적으로 대통령 비자금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YS나 DJ는 상대방의 비자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MB 정부는 수세에 몰리니까 상대방을 치기 위해 비자금 영역을 건드렸다. 그것을 기획한 인물이 B청장이다.
이재오와 이방호는 자신들의 앞날에 김무성이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MB는 내게도 맹형규와 김무성은 날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방호는 그 당시 강창희 핑계를 대면서, 강창희와 서로 주고받기를 하다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을 했다. 여하튼 2008년 공천에서 재량권을 가장 많이 행사한 사람이 이방호였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이방호가 부산 경남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본 큰 축이 김무성과 권철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날라갔다.
인수위가 출범하면서 당선인 비서실 쪽에서 인사 작업을 한 사람은 나와 김원용, 박영준 세 명이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 나는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막상 인사 작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사를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자면 내가 잘 아는 인물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거론됐다.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황당했다. 이런 인물이 무슨 청와대 수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큰일 나겠는데' 하는 걱정이 앞을 가렸다.
이상득은 임태희를 후보 비서실장으로 앉힌 뒤 원로자문그룹이라는 '6인회'를 내세워 현안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6인회'는 실권이 있는 모임은 아니었다. 모양 갖추기에 불과했다. 이상득이 혼자 개입하기 뭐하니까 모양새를 갖춰서 슬쩍 물타기 하고 들어와서 관여를 하려고 만든 것이다. 김덕룡이나 박희태가 역할을 했다면 얼마나 했겠나. 이를테면 내가 선대위 안을 짤 때도 이상득, MB에게 승인을 받은 후 6인 회의를 소집해서 마치 거기서 결정한 것처럼 하는 식이었다.
실세 주변에 사람이 몰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실세 주변에서 그를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매번 되풀이 되는 낙하산 인사와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된다. 역대 대선마다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되면서 낙하산 인사로 이어지고, 각종 이권 청탁으로 이어졌다. 노태우-박철언, 김영삼-김현철, 김대중-세 아들, 노무현-노건평, 이명박-이상득으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 권력실세의 계보와 그 운명이 이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조순제였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최태민의 마지막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다. 과거에 문공부장관 비서관도 지낸 조순제는 박희태, 최병렬과 동년배 지기라고 알려져 있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 딸이었다. 데리고 있는 아들이라고는 의붓아들 조순제 밖에 없다. 청문회장에서 강훈 변호사가 박근혜에게 물었다. "박근혜 후보는 조순제씨를 아십니까?" 박근혜가 "모릅니다."라고 했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설마 박근혜가 조순제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인 김 부장검사처럼 든든한 배경이 있거나 진 전 검사장처럼 일찍이 '진가'를 인정받은 검사들은 레드 카펫 위를 걷는다. 좋은 보직을 거치다 보니 그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넓힐 수 있다. 일선 검사들과는 '노는 물'이 다른 상위 1%의 검사들이다. 야근 후 찌개 집에서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검사도 많다. 검사들이 묵묵히, 일개미처럼 일하는 동안 소수의 특별한 검사는 고급 음식점·술집을 찾아다니며 분탕질을 쳤다. 이미 국민을 배신했던 그들에겐 친구의 배신을 탓할 자격이 없다. 선량한 동료들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죄까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