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위기 이재용, 전조는 지난 2월부터 있었다
김태훈, 유희열, 옹달샘.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혐오 발언을 한 당사자들을 감싸는 의견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의 방어논리를 요약하자면 해당 발언들이 '의도는 그렇지 않으나 실수로 수위를 넘어서 막말이 되어버린 과한 표현'이었기 떄문에 이 정도는 눈감아주고 넘어가주지, 뭘 그렇게 난리를 치냐는 식이다. 이렇게 언제나 항상 결국 결론은 '여성혐오 발언을 한 가해자들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어 지나친 비난을 받는다'로 귀결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현상은 결국, '혐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인식과 합의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박용성 씨를 보고 있으면 '부자가 삼대 가기 어렵다'는 옛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1880년대 할아버지 박승직 씨가 시작한 사업이 아버지 박두병 씨를 거치며 '두산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는 박두병 씨, 아들 박용성 씨는 왜 사람을 키워야 할 대학까지 장사의 수단으로 다루는 것일까요? 게다가 중앙대의 뿌리는 1932년 4월 여성인 임영신 씨가 세운 중앙보육학교와 이듬해 개교한 중앙사범학교, 1946년 설립된 중앙여자대학입니다. '분 바르는 여자'가 세운 학교에서 '분 바르는 여자'를 차별하는 것, 어불성설이 아닙니까?
'두산대'라 불리는 중앙대는 그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빠르고 반대의견을 처리(?)하는 방식도 과격하다. 그런데 이것은 '한 개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다. 중앙대 내부게시판에는 '이사장님 다시 돌아오세요', '학교개혁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책임을 묻자!'라는 학생들의 글이 수두룩하고 추천수도 상당하다. 중앙대의 사례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라진 시대의 공기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대학이 직업교육소임을 인정하라'는 십여년 전의 말은 시대착오적 발언이 아니었다. 그 이후, 모든 대학이 기업이 시키는 대로 환골탈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