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모욕죄 공소시효(5년)가 만료된다.
16년차 합창단이자, 인권운동계에서는 10년차 아이돌 지보이스다
폭 80㎝ 공간에서 두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을 버텼다
20여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대통령이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을 불렀다. 그리고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을 불렀다. 5.18 37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했던 나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29년 만이었다. 세상에, 별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 동생, 박래전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불러주다니....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일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있다니, 나도 별 수 없이 유가족인가 싶었다.
1991년 4월 26일, 시위에 참가한 한 학생이 전투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학생은 바로 명지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였다. 강경대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군 복무의 당위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라는 객관적 사실은 당시 내가 해야만 했던 전투경찰의 임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시청에서 시위 진압 대비 근무를 서다 그곳을 나와 강경대 타살사건 대책위원회가 있던 연세대학교로 가서 양심선언을 했다.
3년이 지나도록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느슨해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세월호 인양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되레 국민들에 의해서 탄핵되었고, 최고 권력자는 구속되어 수감되기에 이르렀지 않은가. 9명의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선체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고, 국회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법안을 올해 안에 다시 제정하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새 정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시민평의회, 시민의회, 시민주권회의, 민회를 만들자는 소리가 올라온다. 명칭은 달라도 취지와 방향은 한 흐름이다. 광장의 열망과 시민의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시민주도 개혁요구안을 만들어내자는 것. 당연히 지금의 의회와 정당, 대의제에 대한 일정한 불신에 기초한다. 일상적인 시기에도 제도정치권의 역량과 진지성을 믿기 어려운데 지금 같은 비상한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에서 교실을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유가족들의 심정을 교육 당국은 그리도 헤아려주지 못합니다. 아직도 멀었다는 듯이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교실에는 2년 전 무사귀환을 기다리던 마음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동안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기억하는 부모의 마음과 친구의 마음이,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공간을 이전하기로 하면 세심한 절차와 예우를 갖추어 진행되어도 모자랄 상황입니다. 그 이전도 그 복원도 이런저런 마음들을 헤아려서 행해져야 할 일입니다. 공감이 전제되지 않는 이전과 복원은 기억 지우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청문회는 세월호참사 2주기를 앞둔 때이자, 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이라는 미묘한 시점에서 열린다. 따라서 청문회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주요 언론들이 외면한다고 해도 정치 상황에 미칠 영향이 클 수 있다. 총선의 쟁점으로 세월호참사가 부각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정부는 가장 우려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세월호를 국민의 뇌리에서 한시바삐 지우고 싶어한다.
정부는 말 바꾸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올해 7월 국회에서 "기간제교사는 공무원이고 교사로서의 모든 권한과 자격이 있는데 그 처우는 아직 미비한 점이 있다. 순직은 반드시 관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민간잠수사들에 대해서도 처음에 해경은 무엇이든 다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진상 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