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비극이라고만 하지 말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나왔던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은 A씨와 함께 있던 남성 B씨였다.
중학생 아들을 제외한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
[스트리머스] 일본 테레비의 젠더 의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들
CCTV에 포착된 동생의 마지막 얼굴은 웃고 있었다. 동생은 무방비였다.
부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했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안으로 후퇴하고 침식되다 죽음을 선택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의에 매료되어 뜬구름 잡는 뜨거움을 주장하다가 허황된 죽음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를 서로 완전히 상반된 두개의 이미지로 비교한다. 그러나 나는 저 둘이 서로 완전한 닮은꼴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사람은 자기 존재가 버거워 그것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어갔다. 다른 하나 역시 자신을 버거워했으나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천황과 일본의 무장을 핑계로 '극기'와 '남자다움' 따위에 한없이 매료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엔 유난히 세렌디피티가 차고 넘친다. 우선은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씨 딸의 경우다. 승마를 하는 최씨 딸이 체육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하려고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까. 특기자 종목에 승마가 처음으로 포함된다. 모집 요강도 '원서 마감일 기준 3년 이내의 수상 내용'을 평가하게 돼 있지만 원서 마감 후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로 당당히 합격한다. 우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학 후 수업 불참 등으로 제적 경고를 받았는데 엄마와 함께 학교에 다녀간 뒤 학칙이 개정된다.
결국 <아가씨>에서 겉으로 보기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성적 묘사 부분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 남녀간의 섹스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가씨와 숙희 사이의 굵직한 섹스 시퀀스가 몇 차례 있고, 이 과정의 성적 묘사는 대단히 과감하고 생각보다 조금씩 더 길다. 그러나 그렇게 긴 묘사를 통틀어 딱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할 만한 구석은 거의 없다. 이 영화에서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욕구를 챙기고자 했던 관객이라면 다른 걸 찾는 게 좋겠다(그녀들이 탈주하는 세계가 정작 남성-포르노그래피화된 야설의 세계다). 대신 그간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있나 싶었던 자세나 표정들이 나와서 좋다(표정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 영화에는 섹스 장면에 언제나 등장하는 재채기하기 직전의 표정 같은 건 없다).
'개인'이 없는 '우리'의 나라에 산다는 것. 단순히 나는 노래방 가기 싫은데 다 같이 가자고 하니까 따라가야 하는 수준의 불편함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집단주의적 광기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비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집단주의 정서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을 집단의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내 가치, 내 주관에 따라 행동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만든 가치, 남들이 만든 주관에 따라 살도록 만든다는 말이다. 개인은 이 소셜스탠다드(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장래희망이 무엇이건 대학에 가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이건 가급적 많이들 선호하는 그런 직장에 자리를 잡고, 서른줄 되면 연인이 있건 없건 결혼을 준비해야 하고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