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수형자의 디테일 가득한 감옥 관찰기.
부정적인 인식을 느낄 때마다 나는 운명론자가 아닌 낭만주의자라고 둘러댔다. 각자가 가진 사주팔자, 원국이 보여주는 풍경과 조후가 신기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라 변명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납득 가능한 이유였지만 아주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자신을 나타내는 글자 본원과 그 주변 오행들이 풀어내는 인간의 서사. 부대끼고 순환하는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맞냐, 틀리냐를 떠나 그저 한 사람의 인생 골격을 보고 상상하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쁜 사주는 없다'는 〈명리〉의 문장을 마음에 품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10일의 불가역적인 결정에 따르는 것은 규칙을 존중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여전히 불복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 생각과 다른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의 일탈에 관대하고, 선의를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든 세대다.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다. 살아온 과정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마음대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탄핵을 지지하는 다수는 상처받은 소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서 극단적인 충돌을 피해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지요.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그 똑똑하신 분들이 모를 리가 없다. 1번부터 두 자리 숫자의 번호를 받은 후보들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심지어 정당투표는 스무 개가 넘는 정당이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자주 하는 얘기지만 투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두려워 한다. 죽음을, '표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이런 두려움은 똑똑하면서도 냉소적인 분들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한국 여성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로 나는 배낭여행을 꼽는다. 유학보다 경제적 비용도 적고, 시간 손실도 적다. 무엇보다 유학보다 훨씬 더 즐거운 추억을 안겨준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로 학업으로, 취업으로, 업무로, 현지인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여행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 없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즐길 수 있는가, 없는가. MBA보다 싸다. 학위가 없어 취업은 MBA보다 못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요즘 MBA도 취업이 예전만 못하다.
비극은 이 버튼이 전혀 다르게 눌리는 데에서 시작된다. 놀랍게도, 어떤 사람은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다가 간장 종지 요청을 거부 당했을 때 마치 70년 전 독일의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이라도 된듯한 격렬한 감정이입과 함께 분노감을 느꼈다고 한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공감능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여자친구가 전화를 잠결에 성의 없게 받았다고 했을 때 분노감이 폭발한다. 어떤 사람은 시위자가 테러리스트처럼 복면을 쓴 것을 보고 분노한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1999년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110명을 심층면접해 추적한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의 민낯은 결코 새롭지 않다. 책에 등장하는, 유학 시절 보잘것없던 꿈 많은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국과 미국에서 엘리트의 신분을 획득해 살아가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지식 생산의 상층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중간자적 역할에 머문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아시아계 엘리트지만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미국에 편안하게 정착할 수 없는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메이저로 살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