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 정말 숨도 못 쉬고 봤다
가톨릭 도덕 신학이 일관적으로 피임을 규탄해오긴 했지만, 늘 지금처럼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보다 먼저 그것이 폭탄으로 사용되는 광경을 목격한 탓에, 원자력이라는 에너지 자체는 도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자연 현상이라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반핵 운동이 터져나온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대한 삶에서 반드시 위대한 문학이 나오는 건 아니다.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문학의 수련은 단지 삶의 경험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훈련, 특히 언어와 사유의 훈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렬한 삶에서 위대한 문학이 나오는 법도 또한 없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알려주시라. 내 판단으로는 미당은 그런 예가 될 수 없다. 내가 되풀이해서 미당의 삶은 비록 치욕스러웠지만, 그의 시가 아름답고 뛰어나다고 옹호하는 이들에게 그런 주장의 구체적 근거를 요구하는 이유다. 어떤 점에서 미당 시는 빼어나며, 한국 시의 역사에서 일종의 전범이 될 수 있는가. 그의 시가 아름답다면 그 아름다움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의 삶과 시의 관계는 무엇인가.
블라인드 채용은 1) 사실상 '추첨제' 성격으로,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한' 채용으로 귀결되고, 2) 매우 제한된 정보로 유능한 사람을 뽑아야 하기에, 자기소개서•논술•면접의 '취업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스펙 과잉과 차별 폐해는 막으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보제공을 차단해서 'Blind=눈을 가리는, 방식'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Sighted=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출신대학 ▲학점 ▲토익/토플 역시 '능력'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그것이 능력의 전부는 아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러셀이 나이 아흔이 넘어 쓴 '러셀 자서전'의 서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이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살아보아야 할 것이다. 금세기 미국의 지성이자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가 있는 미국 MIT 연구실에도 러셀의 이 말이 붙어 있다고 한다. 촘스키는 말한다. 러셀의 세 가지 열정은 바로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애써 꾸미지 않아도 예뻐야 하고,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은 것이 맞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빼짝 말라야 하고, 가수니까 노래도 잘 해야 하고, 춤도 잘 춰야 하고, 개인기도 애교도 있어야 하고... 이미 한계치에 다다를 정도로 많은 것을 강요당하는 여자 아이돌들이 이제는 음식을 섭취하는 모습과 방법까지 강요당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촬영시간이 4시간 가까이 된다. 그동안 그녀들은 수백 개의 눈 앞에서 쉼 없이 계속해서 먹어야 하고, 훈수질에 평가까지 당한다. 무섭고 이상하다 못해 기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