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7월 8일 사드 도입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동맹을 재확인시켰다. 미·중 패권다툼에서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마냥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드가 우리의 안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진정 도움이 될 것인지, 또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가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사드 배치를 이렇게 서둘 필요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차기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판단하고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2022년, 그동안 만년 인구 2위였던 인도가 마침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국으로 떠오를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유엔에 따르면, 이는 이전의 예상연도였던 2028~2030년보다 6~8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인도와 중국의 출산율 격차가 예상보다 커진 탓이다. 현재 인도의 출산율은 2.48명으로, 중국의 1.55명보다 무려 1명이나 많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의 말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매력국가의 자유와 개방, 관용과 통합의 정신에 맞추어 남북교류의 물고를 과감하게 터야 한다.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기계적인 상호주의(Quid pro quo)를 넘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 북한은 남한에 대해 호전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대화를 재개할 분위기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럴수록 우리는 대화와 관여(engagement)를 위한 노력을 배가되어야 한다. 남북한 긴장완화, 한반도 평화정착 없이 한국을 사업하고 유학하고 관광하기 좋은 매력국가로 만들 수는 없다.
강원도의 '환경' '평화' '경제' '문화' 등 4대 올림픽 비전은 함량이 떨어지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평화를 강조하는 데에 이르면 왜곡과 착시를 일으킨다. 심하게 말하면 위선이요, 거짓말이다. 강원도와 조직위는 불·편법적인 가리왕산 파괴로 이미 환경올림픽을 말할 윤리적 지위와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렸다. 평화올림픽의 실질 내용인 남북분산개최나 단일팀 구성 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 역시 지금까지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평화올림픽을 내세운들 누가 진정성 있게 받아드리겠는가. 허세일 뿐이다.
2015년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정에서 중첩된 우연의 산물로, 한국정치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의제가 미국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도입과, 중국 '일대일로'의 한 추진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가입여부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 정치사회세력들이 미·중의 대리전을 벌이게 된 근본적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평화과정의 부재와 적대적 남북관계 때문이다. 목표와 전략이 부재한 한국 외교정책의 냉전적 관성이,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게 하는 형국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