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정책이 단기, 임시직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있다
GDP는 작년대비 3.1% 증가했다
국제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비판은 어떨까. 주류 경제학도 이제 심각한 불평등이 성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임금과 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한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이 보여주듯 여러 선진국들은 불평등의 개선과 총수요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멈추시라. 대신 진지한 연구와 제대로 된 논쟁을 보고 싶다.
빵을 나누는 문제는 역시 전세계의 고민거리다. 개인소득의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지만 최근에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낮아졌고, 다른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노동생산성 상승에 비해 실질임금 상승이 낮아서 국민소득에서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들었고 기업에 비해 가계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계에 수수께끼와도 같은 일이라 이제 학자들은 머리를 짜내어 여러 설명을 내놓고 있다.
"줄푸세는 경제민주화와 상충되지 않는다." 줄푸세 공약을 만들었다는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이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한 이야기다. 줄푸세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으로, 법인세 인하와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엄격한 법질서의 적용을 말한다. 당시의 줄푸세 공약과 사상은 누가 보아도 1980년대의 레이건을 연상시키는, 낙수효과와 시장근본주의에 기초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 줄푸세가 재벌개혁과 나아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의미하는 경제민주화와 상충되지 않는다니. 문재인 후보도 5년 전 "줄푸세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기업가 단체의 숙원사업을 거의 그대로 받은 정부는 100만명 정도가 '누리는' 그 알량한 '특권'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세대 간 대립'이라는 기만적 구도를 잡았다.
한국에서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힘이 너무 약해서 그리고 노조가 없어서 문제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약 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며, 국제노동조합총연맹에 따르면 우리 노동자의 권리는 방글라데시와 같은 세계 최하등급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우려에 노조를 만들기가 너무나 힘겨운 현실이다. 실제로 2014년 정규직의 노조가입률은 13.9%였지만 비정규직은 1.4%에 불과했다.
소득 자체의 문제는 '1인당 국민소득대로라면 우리 가족 1인당 3천만원씩은 벌어야 하는데, 왜 그만큼 벌고 있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유는 간명하다. 실제로 소득이 그만큼으로 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 가계소득과 국민소득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14년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 8천 달러였다. 이 숫자는 국가 전체가 벌어 들인 부가가치를 단순하게 국민 숫자로 나눈 것이다. 그 중 가계로 돌아온 소득 전체를 국민 숫자로 나눈 수치가 가계총가처분소득(PGDI)이다. 이 수치가 2014년 약 1만6천달러였다. 가계소득이 국민소득의 60%가 되지 못한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커져만 가는 경제적 격차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걱정거리다. 주류든 비주류든 경제 정책을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 '불평등 확대 경향'은 이미 의견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기존에 나온 다양한 방법론을 더듬어보면, 대략 세 갈래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