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전 중, 규모 7.0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은 현재 시운전 중인 신고리 3호기뿐입니다. 나머지 24기 원전은 규모 6.5에 맞춰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요. 만약,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부실시공', '부실검증', '원전 비리' 등은 없다고 가정할 때(즉, 모든 원전이 내진설계 기준대로 제대로 지어졌다고 한다면) 일견 안전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경주주변,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동해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대 규모의 원전 밀집지역이다. 경주의 월성원전, 부산의 고리원전, 울진원전에 우리나라의 가동원전 24기 중 18기가 가동 중에 있고, 입지가 거의 같은 신고리, 신월성, 신울진에는 10기 이상의 원전이 건설 혹은 계획 중이다. 그리고 삼척과 영덕에는 각각 2기의 원전을 짓기 위해 입지를 확정했다. 경주에는 90년대 이후 수차례 입지 논란이 있었던 핵폐기장이 운영 중이다. 전 세계에 이렇게 원전이 밀집한 지역은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핵발전소 건설 입지에 활성단층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신고리5·6호기 건설 허가 때에도 이러한 점을 무시했다. 고리1호기를 건설할 당시에는 양산지진대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리와 월성 원전 일대는 이번 지진에서 명확히 확인했듯이 활성단층도 다수 분포하기 때문에 더이상 지진 발생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지진 발생 위험이 가장 큰 곳으로 양산단층대와 울산단층대가 꼽힌다. 두 활성단층이 지나는 울산 경주 부산이 어떤 곳인가. 울산에는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단지가, 경주에는 월성원전단지, 부산에는 고리원전단지에 모두 14기(1기는 건설중)의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위험물질 밀집, 원전 밀집, 그리고 인구 밀집지역이다.
네팔은 지금까지도 헌법이 없습니다. 왕은 끌어내렸지만 어떤 나라를 만들지, 어떤 사회시스템을 구축할지 정치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정치의 실패입니다. 이번 지진 뒤에 국제 NGO들로부터 답지한 구호물품도 정부가 제대로 배분해주지 못하고 있어 비판받고 있기도 합니다. 정부와 정치가 작동하지 않다 보니, 재난에 미리 대비하는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도 물론입니다. 재난 뒤 구호작업도 더딘 것이 당연합니다. 원래부터 부족하던 물과 전기는 이제 완전히 끊긴 곳이 다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