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변함없이 사이좋은!
대신 이메일 써주는 기계라도 있었으면.
“10년 동안 잊고 있던 사실”
참가자들은 각 90초씩 주어진 시간 안에 자유롭게 거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연초는 방치된 일상들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
트럼프의 대선불복 소송 진행 상황을 살펴보자.
트위터에서 비판 의견이 쏟아졌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살아간다.
쿨한 관계가 주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최강대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예상과 달랐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다.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비전으로 다시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위대함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적어도 장벽을 쌓고, 종교를 이유로 남을 차별하고, 고문과 불법구금으로 인권을 탄압하고, 언론과 맞서 싸우는 것이 위대함과 거리가 먼 것은 분명하다. 경제에서 안보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 입각해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것 또한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취임 일주일 만에 트럼프가 대통령을 맡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게 끔찍할 정도로 명백해졌기 때문에 탄핵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건 자신만의 현실에 살며 그냥 말로만 떠드는 후보일 때와는 다른 문제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통치는 진짜 현실이다. 현실에선 반발이 일어난다. 트럼프가 우러러보는 여러 독재 정권과는 달리, 헌법과 정치적 견제가 복잡하게 얽힌 미국의 체제는 독재를 막는다. 간신히 막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막긴 막아낸다. 그리고 트럼프의 행동이 무모해질수록 견제도 더 강해진다.
인간은 우월과 열등,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주변으로 타자를 위계 세운다. 차별은 '합리적 이성'으로 정당화된다. 폭력의 원리다. 백인과 흑인, 서양과 동양, 문명과 야만,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이 그래왔다. 때문에 나는 비인간 동물이 나보다 열등하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폭력을 정당화할 '합리적 이성'의 근거를 잃어버렸다.
가혹하게 묘사하자면 타인들의 허영, 미화를 눈감아 주고 서로에게 하트를 보답하는 나르시시즘 대잔치다. 편집된 현실의 작은 조각을 올리는데 인스타그램보다 더 적합한 플랫폼은 없다. 사기꾼과 셀카라는 말을 합친 #셀기꾼, 현실과의 간격, 귀여운 자괴감 섞인 해시태그가 유행했던 것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양심이 움직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너도 뻥치고 나도 뻥치고 알 사람 다 알지만 잘생긴 나에게 하트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