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장을 연기한다.
'방아쇠'를 당긴 중앙정보부장을 연기한다.
"긍정적으로 검토 중"
보존 범위부터 장소, 공간 활용방안 등 정해야 할 내용이 많다.
90년대에도 탈북 러시가 있었다. 91년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자 많은 북한 사람은 북한 체제의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침몰선을 탈출하는 쥐떼 같은 탈북 러시가 일어나고 그 클라이맥스가 97년 북한 주체사상의 '아버지' 황장엽의 한국 망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때의 위기, 탈북 사태가 예고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넘기고 오늘까지 건재한다.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소한 일로 당·정부 실력자들을 처형·숙청하는 김정은의 공포정치, 강력한 국제제재,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소원해진 북·중 관계일 것이다.
이병기는 자신이 몸 담았던 신군부의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이나 김영삼의 이른바 문민정부가 끝나고, 자신이 모셨던 이회창이 두 번이나 대선에서 석패하였고 그 와중에 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에 관여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수 측이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때는 주일대사로 복귀하였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을 거쳐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내게 되니 이 역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3선 개헌의 무리한 추진이 문제가 되어 후퇴하였다가 주일대사를 거쳐 다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했던 이후락의 관운을 연상시킨다.
전두환/노태우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선수를 치기 위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데 북괴군의 남침을 막으라고 국민들이 피 같은 세금을 내서 먹이고 입힌 전방사단 군병력들을 빼내어서 정 총장 측 지지 군부세력을 공격하고 군권을 탈취한다(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이른바 12.12 사건). 실제로 존재하는 북한정권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 남한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큰 군대를 유지해 왔고 그때까지의 역대 남한정권들은 심지어 남한 내 자유를 유보하는 근거로 북한의 위협을 들먹여 왔다. 그런데 바로 그자들이 군권탈취를 위해서 휴전선을 지켜야 하는 전방사단 군병력들을 빼내어 총부리를 같은 국군들에게 돌리게 했으니 그 당시에 북한이 남침이라도 했으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 참으로 아찔하고 모골이 송연한 일이었다. 누가 진정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예라고 하겠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이른바 '혁명공약'을 발표했고 그 마지막에서 참신한 민간 정치인에게 정부를 이양하고 자신들은 군으로 복귀하겠다는 취지로 천명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최종적으로 스스로 군복을 벗고 직접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약속을 어겼고("이 땅에 나같은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드립을 전역식에서 치더니만 뒤로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키웠;;) 군정 3년 간에도 여러 번 약속을 번복했다. 정부의 발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풍조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에는 박정희의 이러한 민정이양/군정연장 공약의 잦은 번복이(이승만의 서울사수 녹음방송과 함께)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적 느낌이고 이게 박정희의 가장 큰 적폐; 중 하나라고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 홍보특보에 김경재 전 의원을 임명하였다. 원래 재선까지 한 야당 인사이다가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하였던 김경재 전 의원은 호남 출신이기도 하여 어찌 보면 여론이 영남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 측에 요구하여 왔던 탕평인사에 부합하는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경재 전 의원이 유명해져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경력이 이른바 [김형욱 회고록]의 집필자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 집필자가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홍보특보로 모시며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니 좀 비감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