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행정기관이 황우석이 책임자로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라는 곳에 고등학생들의 '인턴십'을 권하면서, "인류 희망을 위한 세계 최고의 생명 공학 연구 기관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구원에서 생명공학 분야의 특화된 스펙활동으로 대입 경쟁력을 강화"하자며 일선 학교에 뿌린 공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넋을 잃고 만다. '인위적 실수'로 자신의 모교에서 쫓겨나고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의 명예에 누런 똥칠을 했던 인사가 공무원들에게 또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떻게 이리도 황망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바야흐로 이 시대에는 그 거리낌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람을 정말로 개돼지로 보는 것이다. 무슨 취급을 받든 어떤 경멸을 듣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로 정리되는 망부석들의 세상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자기에게 월급주는 국민들에게 개돼지라는 호칭을 선사하고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우기는 저 잘난 행정고시 출신 망나니의 망언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회는 결국 더 큰 복수를 받는다. 복수를 받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사람 무서운 걸 알게 해 주자.
1967년 4월 28일 소환장을 받은 알리가 휴스턴의 신병 집결지에 나타났다. 이들은 신체검사를 마친 뒤 루이지애나 기지로 이동해야 했다. 그 자리에 모여든 신병들은 모두 26명. 군 장교는 무하마드 알리 대신 캐시어스 클레이를 불렀다. 클레이 아니 알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거듭 이름이 호명되고 징집을 거부할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발해졌으나 무하마드 알리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 1967년 4월 28일, 떠벌이 알리는 행동하는 알리로 우뚝 섰다.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백정도 사람이고 양반도 사람이다. 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 형평운동은 우리 근대사상 최초의 '인권 운동'으로 평가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차별이란 자체가 인간성에 반하는 그릇된 행동임을 선언한 운동이었다.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일어서서 싸우는 것도 정의로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일원도 아니면서, 전혀 차별과 탄압과는 거리가 먼 처지의 사람으로서 설움받는 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과 어깨를 걸고 앞장까지 서고 그 때문에 받아야 할 불명예와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하는 행위는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인간성의 고갱이일 것이다. 강상호는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