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문을 열어주고, 자유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은 그리 크지 않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물질적 풍요는 큰 범위가 아닌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매년 1,500조 가까운 돈이 돌고 있고, 한 해 예산만 하더라도 400조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없어서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이제 우리는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책무인 공공성에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다. 그렇다면 일상경제생활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최소한 생필품 가격이나 월세 등 먹고사는 문제와 교통비나 각종 공과금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국가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구체적인 요금산정이나 고시에 대해서는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국민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답을 해야 한다.
단순히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공약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실행되도록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경제대통령의 판별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공허한 복지공약만이 아니라, 경제와 내수활성화를 위한 비전과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적으로 중소기업 및 자영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용의 거의 90%를 차지한다. 지금처럼 대기업만 눈에 보이고 중소기업의 활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국가경제의 발전은커녕 복지비 재원마련도 불가능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론'을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논쟁이 붙고 있다. 사회의 문제가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울대 폐지와 대학의 평준화라는 주장은 가벼운 발언이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왜곡된 욕망구조에 있다.
문제는 아무도 헌법을 우리의 기본가치와 상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는, 경제발전은 기득권을 차지하고 보호하는 게 모두의 지상 과제이고 모두의 삶의 목표였다. 그러는 동안 헌법은 무시되었고 상식도 사라졌다. 이제 역사발전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다시 인간과 개인의 상식에 기초하여 헌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고,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도 선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