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만들어진다’ → 여자가 ‘되는 것이다’
포토라인에 섰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집중의 미학
일본 사례를 가져와보자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을 해보자. 그 우회로가 그렇게나 뛰어나고 효과적이라면 시간과 검증을 통해서 그 효과가 입증된 후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편입이 된다. 이것이 속칭 기본과 주류 이론의 힘이다.
경찰이 이 BJ에 대해 물린 벌금은 겨우 5만원에 불과했다. 공공연하게 살인을 입에 올리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을 한 것에 대한 대가가 겨우 5만원이다. 종종 우리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경찰들의 도덕 관념이 너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일로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란 것이 명확하게 인지가 되어 있다면 함부로 입 밖에도 못 꺼냈을 것이며 거기에 수천명의 시청자가 환호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5만원의 범칙금은 너무나도 처참하다.
돈은 있지만 안목과 취향은 빈곤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주변엔 소위 '업자'가 몰린다. 이런 업자들은 아주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자본만 많고 취향은 빈곤한 사람들을 홀릴만한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잘 현혹할 줄도 안다. 취향이 없기 때문에 '요즘 잘 나가는 것'이란 말에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것을 덥썩 문다. 이름만 다른 붕어빵들의 탄생이다. 돈을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돈을 쓰게 만들 수가 있겠나?
기계로 당장 대체하기 힘든 경우라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미준수로 대응할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미준수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생산성을 넘어서서 임금이 오를 경우 최저임금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을(못할) 업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동감독관도 부족하다. 이도 저도 대응할 수 없다면 결국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매년 7%, 올해는 두 자릿수로 오른 임금을 맞춰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것이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원재료뿐만 아니라 노동을 투입해야 하고 그것을 만들 공간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상품을 생산할 수 없다. 생산의 3요소 중, 2가지 요소에서 상승 압력이 존재하는데 가격을 올리지 않길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날강도 심보다. 심지어 닭은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이걸 알면 가격 상승을 그렇게 쉽게 폭리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쉽게 폭리라는 딱지를 붙여 대는 것은 이 구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면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사적인 대화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무려 공인인 정당정치인이 자신의 입으로 떠벌렸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감'이다. (동일한 이유로 나는 청와대 행정관 탁씨를 이보다 더한 가장 최악으로 본다. 이쪽은 아예 사적 발언도 아니고 퍼블리싱이다. 여당 지지자이면서 탁씨를 옹호하고 이언주의 사퇴를 이야기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사적인 대화니 문제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공인이 아닌 사인이 되어서 사적 대화를 하면 될 일이다. 적어도 이런 것들이 공인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임은 분명하다. 속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 것까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내뱉은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
미드, 영드 같은 해외 드라마를 즐기는 국내 시청자들은 국내의 이상한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컨텐츠의 질적인 측면에서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다. 물론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매우 높은 것은 그것을 원하는 소비자 취향의 질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라고 그런 막장 드라마가 없겠나? '소프 오페라'라고 해서 이 장르도 엄청나게 잘 팔리는 장르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 왕좌의 게임과 같은 드라마를 왜 우리나라에선 못 만들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시장이 작아서다.
미국인 17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84%, 여자의 58%가 첫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해야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6개월차 이상 되면 남자의 75%, 여자의 83%가 데이트 비용을 나눠서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재미있는 게 데이트 비용 분담에 대해서 여자의 지지율이 남자보다 높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음에도 전체 남자의 76%가 여자가 비용을 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단 것이다.
정규직이 가진 금융 접근의 용이함은 정규직이 가진 특권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특권이란 것은 누리는 사람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딱히 새로울 것도 없긴 하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노동자 중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여신이 필요한 사람 중 다수는 은행을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저축은행을 찾아가고 대부업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풍족한 은행여신과 한도를 누리는 정규직들은 여기에서 화살을 대부업체와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돌린다. '왜 그런 비싼 곳을 이용하느냐?'
일반적으로 '노동' 하면 '생산을 위한 노동'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생산을 하기 위한 노동을 충전하기 위한 노동'은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가사다. 이 가사 노동은 어마어마한 노동이다. 예를 들어 식사를 보자. 혼자 사는 내 경우엔 '오늘 저녁에 뭐 먹지'가 늘 고민이다. 밥상 받는 사람이야 그런 고민 별로 안 하겠지만 만드는 사람은 이 고민을 늘 한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떠올려보고 없으면 사러 간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은 보는데 이동시간+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는 시간 포함해서 나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집에 와서 조리 시간 말고 재료를 다듬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또 따로 있다.
전통시장은 쇼핑에도 불편하며 청결하지도 않고 때로는 시장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일이 매우 지치고 귀찮은 일이 되기도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많은 시장 상인들은 3-40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흐름에도 완전히 뒤쳐졌다. 전통시장의 위기는 그것을 움직이는 상인들이 현대의 트렌드에 맞추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탓이 아니다. 기존의 전통시장의 영업 방식과 시스템을 지지해줄 장노년층은 점점 줄어 가고 있다. 그 점에서 보자면 전통시장은 위기가 아니라 세대교체에 의한 자연적 쇠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적 쇠퇴에는 물을 아무리 붓는다 하여도 소용이 없다.
이런 유명 프로그램에 가게가 소개되어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이 그 가게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대박'이 나는 것이 가게에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가게들은 대박 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단 소개가 나가서 사람이 몰리는 경우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는 운명을 맞기 때문이다. 또한 각 음식점들은 자신의 퀄리티가 감소하지 않는 선에서 감당 가능한 최대 주문량이 정해져 있다. 이런 파급력 큰 프로그램의 소개는 그 이상의 주문량이 밀려와서 전체적인 퀄리티 하락과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영업 지속의 위기가 찾아오게 만든다.
블랙 컨슈머란 단어가 생긴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일선의 직원들에게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방어권은 주지 않고 블랙 컨슈머들이 요구하란 대로 다 들어주는 식으로 조용히 잠재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러니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들이 줄어들 리가 있나. 오히려 더 장려하는 쪽으로 인센티브가 형성되어 '진상짓'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포장하는 족속들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현장의 직원에게 자기 방어권이 없다는 점이 이번 일의 가장 큰 문제다. 만약 그러한 일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 권리를 가지고 회사에서 책임을 져준다면 어느 직원이 거기서 단호하게 나서지 않겠는가?
신분제 시절에 누군가는 그러한 신분 제도를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고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시절에 누군가는 피부색이 다를 뿐인 같은 인간을 그렇게 대우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고 시민권이 소수의 특권이던 시절에 누군가는 이것이 왜 보편의 권리가 아닌지에 대해 불편함과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일상적인 것에 의문을 가지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문제를 만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