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부모의 가장 큰 의무는 자식 농사였다. 그만큼 자식을 키우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함께 가는 대상이며, 살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양육의 무게가 가벼운 부모는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자녀의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를 부모의 인생 성적표로 몰아간다. 때문에 엄마들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참아가며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 전업주부는 그들대로 아이에게 더 못해주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워킹맘들은 일과 양육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해 주검을 수습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세월호 구조에 참여한 다수의 민간 잠수사들이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현업에 복귀한 분들도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은 보상은 물론, 신체적·정신적 치료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다. 흔히 재난을 직접 겪은 당사자만 트라우마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재난 목격자,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광범위하다.
자매가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언니는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체형이었고, 동생은 언니에 비해 체격이 큰 편이었지만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찾아온 이유는 동생의 '섭식장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동생과 둘만의 시간을 갖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릴 때 그녀는 언니와 함께 있으면 주변 어른들에게 언니는 항상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고 본인은 귀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귀엽다는 말, 착하게 생겼다는 말이 결국 언니와 비교해서 못생겼다는 뜻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언니는 더 예뻐 보이고 칭찬받고, 본인은 점점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았다고 합니다.
폭력은 연인 관계에서도 결혼을 해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 가해자들이 말하는 범행동기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들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라고 말하지요. 여자 아이에게 무례한 남자 아이를 보고 어른들은 "괜찮아, 제가 너 좋아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성인이 된 여자 아이는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해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어릴 적 들었던 말을 떠올립니다. "괜찮아, 제가 너 좋아서 그래."
문제는 아동학대 피해 아동의 정서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떨까. 부모도 나를 소홀히 해서 폭력을 가하고, 사회적으로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외로움과 불신이 가득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사건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성인보다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가치관 형성과 사회성 등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올해 2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는 일부 정신질환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 때문에 자해, 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은 자해 위험성의 1/100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1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조현병 환자의 범행으로만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아픔이 너무 많고, 그 아픔까지 상품화가 되는 요즘 세상에선 이 좋은 말조차 왠지 식상한 위로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치료에서는 '아픈 만큼 성장한다'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 PTG입니다. 외상 사건을 겪고 트라우마를 입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정신적 성장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성이 정서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와버리곤 하지요. 억누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반대의 감정을 대립시킬 수 있습니다. 불안한 느낌이 들 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떠올리면 안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뇌에는 긍정적 기억보다 부정적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이 더 오래가지요. 좋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이 떠올랐을 때 거기에 빠져 있기만 한다면, 나쁜 기억은 더 강하게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흔히 '기억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다소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일만 떠올리며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추억이라는 보호막 아래 숨어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사는 게 쉽지는 않다고 , 마음이 굳세지 못해서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람마다 겪었던 일이 다르고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는 더위를 잘 타고 누구는 추위를 잘 타는 것처럼,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받게 되는 충격은 모두 다릅니다.
이 그림은 번존스가 잠바코와 헤어지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의 부탁을 받고 생일 선물로 그렸다고 합니다. 잠바코의 커다란 두 눈이 애처롭게 상대를 갈구하는 듯도 하고,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하는 듯도 하고, 원망과 분노를 담고 있는 듯도 합니다. 입술은 애써 울음을 참는 듯하고요. 그러나 상대를 직시하는 눈빛은 슬픔에만 젖어 있는 연약한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네요.
우리는 터번을 쓰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정말 하녀였는지, 좋은 집안의 딸이었는지, 아니면 페르메이르의 상상 속 인물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상 속의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페르메이르가 너무나 정성 들여서 어떤 인물보다 아름답게 소녀를 그려냈네요.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 속 여인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참고로, 이 그림에 많이 쓰인 파란색 물감은 그 당시 가장 비싼 물감이었다고 하니, 그림에 쏟은 화가의 정성을 짐작할 수 있지요.
교통사고로 손에 붕대를 감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모습 중 붕대를 둥글게 만 손을 유독 강조해서 그렸지요. 성폭력을 당한 이의 경우 성기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해서 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해서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냅니다. 르브룅이 자신의 손을 가장 강조한 것은 손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그녀는 손에 대한 칭찬, 즉 재능에 대한 칭찬을 어릴 때부터 들었을 것이고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순수하게 자신의 모습에만 열중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이 자화상만큼 인간미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드물지요. 이 작품 안에서 라파엘로는 부드럽지만 당당해 보입니다. 고갱과 고흐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찾아내고 탐구하는 과정을 자화상으로 드러냈다면 라파엘로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자화상으로 남기는 일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