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큰 일을 해주셨다."
지난 1일 공연을 편집했다.
"결국 우리 모두를 울린 산에 형”
김포공항을 출발한 전세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다.
30명이 더 늘어났다.
'남조선 날라리풍'의 대명사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아이돌 혹은 어린 친구들이랑 작업을 많이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작업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었을 거예요. 여긴 내 자리가 아닌데 하는 생각들 때문에요. 실제로도 2007,8년쯤에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괴로웠던 적도 많아요. 대중음악 시장이 제가 생각했던 것들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더 이상 사람들이 음악을 '귀로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음악인보다는 비디오 스타에 열광하고, 앨범 자체로가 아니라 조각조각 난 노래들을 모바일 기기 등으로 소비하는 현상들 때문이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많이 극복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