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민주화'에 기여한 입장에서 대놓고 돈과 자리를 요구하기는 어려우니 뭔가 복잡하고 관념적인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지만, 결국 돈과 자리, 아니 돈 되는 자리를 달라는 뜻이다.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거기서 누가 더 주역이고 덜 주역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최순실과 박근혜가 구치소에 들어가 재판을 받고,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완료되었다고 봐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그동안 나의 노고를 알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적폐다.
학생 수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경험칙에 따르면 25명 내외다) 교사가 학생 전체와 눈을 맞추지 못하며, 반드시 사각이 생긴다. 수업 질서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질서 유지가 어려우며, 결국 체벌의 유혹도 커진다. 한 교실에 60-70명이 들어가서 수업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가혹한 체벌이 횡행했는데, 최근 교실에서 체벌을 거의 사라지게 한 1등 공신은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의 정책이 아니라 그래도 30명대로 줄어든 학급당 인원이다.
이제는 교권을 마냥 방치해 두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현재 학교 현장의 상황은 너무 심각하며,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교권은커녕 자연인으로서 인권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와 있다. 그런데 교권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교권의 권이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권은 권력이 아니라 권리다. 다른 하나는 이 권리가 교사의 권리, 혹은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원의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교권은 교원의 권력이 아니라 학생의 권리에 속한다.
대입 제도가 마치 수능정시에서 수시학종으로 바뀌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수능정시는 이미 대입의 주요 방법이 아니게 된 지 오래입니다. 1/3도 안됩니다. 그나마 남겨놓은 것도 시골에서 머리띠 싸매는 고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원빨', '돈빨'로 밀어붙이는 강남, 특목, 자사고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험 한방, 이건 돈빨 학원빨로 어떻게 됩니다. 하지만 3년간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 이건 돈빨 학원빨로 안됩니다.
지난번 51.6%에게 박근혜 찍은 것을 후회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들에게 바로 그 반대쪽 문재인을 찍으라고 하긴 어렵다. 그들은 친박 외의 그러나 문재인이 아닌 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 결집을 안철수로 단일화시키느냐 흩느냐에 민주당의 성패가 걸려 있다. 안철수는 한국당 쪽에는 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봐야 얻을 것도 없고, 한국당 지지층 역시 막판에 가면 문재인 안 되게 하기 위해서 '될 놈 찍자'로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외로 막판에 엄청난 결집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게 이른바 대세론 붕괴 시나리오의 기반이다. 아주 허황된가? 그렇지 않다.
세월호의 경우, 고의적으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적절하지 못하게 대응하여 많은 생명을 잃게 만들었는데, 이는 일종의 무능력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명백히 드러난 위법을 넘어 직무수행 능력, 직무수행 태도까지 문제삼아 선출직을 탄핵한다면 이 역시 국민주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그럼 무능력하거나 게을러터진 대통령 뽑으면 임기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렇다. 그건 뽑은 국민이 치러야 할 다가다. 그러니, 선거는 장난이 아니다.
주소만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계층에 따른 지역 분할이 공고화된 나라 아닌가? 심지어 비슷한 계층간에도 지역별 선을 긋는다. 같은 강남구인데도 압구정동 아파트 주민들이 다른 아파트 주민들을 차별하고, 잠실 학부모들이 같은 송파구의 다른 지역 학생들과 같은 학교에 그들의 자녀를 배정했다고 교육청에 떼로 몰려가서 항의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빈곤층의 자녀는 물론 부유층의 자녀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렵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술 면접은 각종 인문학 독서, 토의토론, 스피치 훈련을 받은(주로 사교육을 통해) 학생이 유리하고, 학종은 생활기록부에 다양한 볼거리, 즉 스펙을 많이 넣을 수 있는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격이 이어지다 보니 학종을 부잣집 아이들이 시험이라는 관문을 피해 쉽게 명문대학 가는 지름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시험 쳐서 대학가는 방식으로는 가난한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받으면 감당할 수 없는 방법으로 대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문제는 이제 교직이 더 이상 시시한 직업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시하지 않은 좋은 직장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대한 사회적 분노와 질시가 교직에 대한 왜곡된 공격과 집단적인 맨스플레인으로 나타났다. 교육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남성 비전문가들의 훈수가 쏟아지는 것이다. 여성으로 간주되는 교직에 대해 남자들이 한 수 가르쳐주고 필요하면 직접 개입해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한두 명이 하기 시작하자 유행처럼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던진다.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든 비결이 무엇이냐고 어느 일본인이 물어보자 "야근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저 많은 사람들이 야근까지 하면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 문서를 보기 좋게 꾸미고, 파워포인트를 멋있게 제작하느라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사람이 한국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파워포인트 좀 그만 만들어라."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촌지나 뇌물, 향응 등을 엄단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살포하고, 신문과 방송은 하고 많은 날 중 스승의 날을 골라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는 학교, 그 속에서 신음하는 학부모의 고충을 대서특필했다. 또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는 레토릭인 "요즘 시대에는 직업인으로서 교사만 있을 뿐 스승이 없다."라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당연히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싫다. 스승의 날 폐지 찬반 투표를 하면 아마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폐지되고 말 것이다.
독일에서는 파시즘과 유대인 학살 같은 참상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지만, 그 교육이 가스실 체험, 죽어가는 유태인의 모습을 다룬 동영상 보기 따위로 이루어졌다면, 교육이 아니라 가혹행위라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여러 상황들을 너무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세월호 희생자의 마지막 순간을 학생들에게 떠올리게 하고 그 심정을 공유하게 하는 활동까지 포함한 전교조의 계기교육 자료는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교육부의 반응 역시 비교육적이다.
교육자가 자꾸 직급을 따지는 게 치졸하고 속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이 하도 교사를 깎아 내리니 사실관계만은 분명하게 해두어야겠다. 우선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장학관이 직급이 아니라는 것부터 분명히 하자. 초중등교원은 모두 똑같은 호봉체계를 가지고 있다. 교사가 교감이 되건, 교장이 되건 호봉은 단 한 칸도 바뀌지 않는다. 하물며 장학사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교사가 장학사가 되는 것을, 심지어 장학관이 되는 것도 승진한다 말하지 않는다. 전직이 공식 용어다.
교사도 잘 모를 정도니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더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신고해야 할 의무는 교사, 강사, 의사 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있다. 다만 교사, 강사, 의사는 신고하지 않았을 때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이 법에 대한 부족한 홍보, 그리고 이 법을 집행하고자 하는 빈약한 의지는 졸지에 전국의 모든 어른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말았다.
국정교과서의 반대말은 대안교과서가 아니다. 국정교과서의 반대말은 역사교사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재구성이며, 학생들의 비판적 탐구를 격려하는 수업혁신이다. 진보교육감들은 진정 진보적이라면 국정교과서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일선 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의 재량권을 넓히고, 교사들의 수업혁신을 지원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책의 성격이 단지 여러 자료들 중 하나이며 단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함을 명시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이기는 길이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모욕한 뒤, 이를 같은 반 학생들이 동영상으로 돌린 사건이 있었다.남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중고등학교에서 젊은 여교사에게 가해지는 성적인 희롱과 모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교사가 아니라 여성을 희롱한다. 문화적 소수자인 원어민 영어교사가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때문에 사임한 경우도 있다. 이런 사건들은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며, 왕따 등 각종 학교폭력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할 수 있을까? 전혀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