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검찰의 대통령조사방침을 접하면서 과거 박지원대변인의 명언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다. 박근혜의 검찰이 사상최초로 현직대통령을 조사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정치검찰이 국민검찰로 바뀌지 않는다. 국정원댓글개입 수사, 십상시 수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 숱한 대형국면마다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며 국민이 준 검찰권을 남용해온 부역죄가 덜어지지 않는다. 만약 지난 1주 동안 광장참여가 떨어지고 정권지지가 반등했다고 가정해보라. 검찰조사결과는 보나마나 '역시나'였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9천473명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죄가 있다면 세월호참사 처리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한 죄다. 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죄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적극지지자를 블랙리스트로 묶어 불이익을 주기로 한 정권의 행위는 권력의 힘으로 유력야권주자의 손발을 묶고 확장력을 막는 간악하고 비열한 민의왜곡이자 중대한 범법행위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민주법치국가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국기문란의 중대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