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마치 큰 모욕이라도 당한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후퇴'를 재정의할 때가 왔다
독일, 영국 등이 있다
경제 전쟁을 넘어서
양식 있는 보수파의 의견은 경청해야 한다.
2010년 약 10%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9월 4.2%로 하락하여 완전고용 상태지만 개인 소비지출 물가상승률은 연초보다 하락하여 전년 대비 1.6%였다. 일본은 양적완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1%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실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의 수수께끼라 부를 만하다.
'저복지'도 큰 문제지만, '저(低)재정' 즉 국민총생산액 중에서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이 재산, 소비, 근로소득 중에서 세금으로 내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 부자나라이기는 하지만 기업과 개인이 부자이고,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너무 적어서 재분배 정책 , 즉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행사를 하는 행사장 바로 바깥에서 정작 장애인들은 내팽개쳐지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복지부 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어느 때보다 경호는 더욱 삼엄했고, 진압은 신속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 2014년도 학부 등록금을 비교해보면 미국 21,189달러, 우리나라 8,554달러, 호주 8,322달러, 일본 8,263달러로 우리나라 국민소득 대비 사립대학 등록금이 아주 높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석사 학생 등록금은 1만 2천 달러를 넘어서서 호주와 일본의 두 배 수준을 넘는다. 학부 학생 100명 감소는 85만 달러의 수입 감소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줄 경우 이를 대체할 만한 소득원이 별로 없는 대학으로서는 학생 수 감축은 곧바로 대학의 재정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부정원을 지키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정치가 사적욕망들이 각축하는 최종게임이 될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완장들의 활갯짓이다. 변절자로 지목된 조직원은 감옥에서라도 처형해야(execute!) 하는 갱단의 행태가 백주에 공공연히 횡행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선진국의 대량생산과 소비, 그리고 대량폐기의 풍요의 개발논리에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본래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여 만들어진 발전논리라는 점이다. 20%의 소수국가가 누리는 풍요를 언젠가 시간간격을 두고 인류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세계는 어떨까?
복지의 필요성과 국가의 복지의지 간의 현격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반(反)복지담론들이 넘친다. 예컨대 우리는 성장보다 빈곤과 불평등을 더 심각히 체감하면서도 정부정책이 성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성장이 분배의 전제라는 담론에 매우 친숙하다. 물론 성장은 분배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서유럽국가들이 복지국가를 발진시킨 것은 종전의 폐허 위에서였고, 오늘날의 한국에 비해 소득수준이 뒤지던 1980년대에는 국가복지 수준이 이미 완숙 단계에 들어섰다. 아마 미국이 복지국가의 반열에 들지 못한 이유를 성장의 부족 탓으로 돌릴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10년 전 발표를 보면 단 1%의 사람들이 사유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토지소유편중이 극심한 반면, 변변한 부동산이 없는 사람들은 지출의 무려 3분의 1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심지어 저소득층의 경우 지출의 4할 이상을 주거비로 썼다. 노력하지 않아도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불로소득을 통해 부자가 되고, 뼈 빠지게 노력해도 부동산이 없으면 가난을 면키 어려운 사회가 정상적인 발전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