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는 점심을 두 번이나 먹었다.
말을 잘 알아듣고 예뻤던 반려견 순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최근 벌어진 '곰인형 대마 밀수 사건'과 비교된다.
스포츠 채널 ESPN에서 KBO 경기들이 중계된다
″녀석은 나무 위에 숨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패가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잘 나가던 여성시인의 철없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이 일을 한국의 비혼 중년여성들의 형편없이 열악한 삶의 질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오죽하면 천하의 최영미가 근로장려금 수급사실을 밝히고 월셋방을 전전하는 게 끔찍해 자신을 호텔홍보요원으로 '판매할' 생각까지 했을까 싶다. 그것은 한 부황기 든 여성시인의 헛소리가 아니다. 내겐 그 소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헬조선의 최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이 땅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타전하는 SOS 신호로 들린다.
당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좀 더 저속해지더라도 장사가 잘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 지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나를 개조하기 위한 과제들을 만들어 나 자신을 더 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질투심만큼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건 없다. 그건 그 대상이 '일'이 됐건 '돈'이 됐건 혹은 '사랑'이 됐건 '탐욕'이 됐건.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은 일과 명예, 영향력을 좇던 남자는 자기 자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저속'해졌다. 이런저런 저속한 욕망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다 소화기관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괴물. 추악하다 못해 이제는 돌연 불쌍해 보이는 괴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제를 뛰어넘는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데, 왜 꼭 '사람'은 <토이스토리> 때보다 썩 발전하지 않은 수준으로 묘사하는 걸까. '라일리'를 비롯한 <인사이드 아웃>의 '인간'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카락이나 옷의 질감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데 반해 신체 비율과 이목구비, 피부의 질감 등은 <심슨>과 비교해도 별로 월등하지 않은 현실감을 보여준다. 털이니 인형이니 하는 소재의 질감에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노력을 들여가며 과시용 캐릭터를 만들어 왔으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이입의 대상인 '인간'에게 만큼은 어째서 이렇게 기술력을 아끼는 걸까. 여기서 '불쾌한 골짜기'라는 이론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