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제가 '민중의 노래'였다.
네티즌이 알려준 뒤에야 뒤늦게 반어법임을 알아챘다.
우선 원전의 위험성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주장을 보자. 후쿠시마 원전은 1억년에 한번 사고가 날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지만, 지진이 나자 동시에 3기의 원전이 폭발했다. 또 가동된 60년 사이 6기의 원전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났다. 우리 원전에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했는지 다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더 큰 문제는 폐기물 처리의 문제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최소한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안전하게 해결한 나라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거짓말과 시간끌기로 일관된 박근혜의 헌재 제출 답변서가 박근혜의 노림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답변서의 백미는 "대통령이 최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지금 박근혜의 대리인단은 최순실과 박근혜가 친족 사이였다고 자백하는 것인가?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된 것은 이 세종이란 사내가 1443년에 훈민정음을 완성해 놓고선 바로 일반 백성에게 반포하지 않고 3년(!) 동안 기다리며 말하자면 테스트를 해보고 쓸 만하다는 자신이 생긴 다음인 1446년에야 반포한 점이다. 뭐랄까 당시 조선의 땅 한자락에 대한 처분권, 백성 한 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당신 세종대왕님께서 모두 쥐고 있다는 도저한 절대군주로서의 자신감이 없으면 감행할 수 없는 일종의 사치이면서도 또한 그러한 절대권력자가 빠지기 쉬운 자만과 조급함의 유혹을 대단한 자제력으로 극복한 게 이 '훈민정음 창제 3년 후 반포'라는 기막힌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학문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소신을 지킨 교수들이 정치권이나 관계로 들어가 제대로 일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폴리페서는 평상시 학문적 업적도 보잘 것 없고, 소신이나 비전도 볼 것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인물들이 국정에 참여했을 때 성공하기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한번도 남의 밑에 가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한지 실험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한 나라의 최고위직 관직에 진출해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 중 요행이다.
자기소개서 대필(代筆)은 교사(50%), 학생(80%), 학부모(83%) 모두가 빈번히 일어난다고 답했다. 교사도 50% 비율을 보여, 사실상 자기소개서 대필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 교육자들이 외면하고 싶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교육현실"이 여기에 있다. 필자도 대입 서류전형을 하다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뻥"이고, "구라"인지 구별이 어렵다. 대입전형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진실과 "뻥" 그리고 "구라"를 찾아내어 판별하는 것이다. 전공적합성, 인성, 창의성 확인은 그 다음에 해야 할 과제가 된다.
온 국민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칠까?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기는 했으나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9년 9월 이승만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그 날을 광복절로 지키기로 하고, 1950년, 51년 8월 15일을 각각 제2회,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 한 언론의 실수로 제3회가 제6회로 기록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아베담화에도 식민지배와 위안부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일제'라는 가해주체가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어'가 없다. 만주사변의 배경으로 세계공황을 든 것,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으름장(?)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요컨대 아베담화는 반성의 내용과 형식 모두 낙제점이다.
몇몇 보수언론에서는 박래군 선배가 가는 곳마다 불법과 폭력이 난무했다고 매도하고 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제도와 법이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 국가와 정부가 보호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내몰리고 있는 현장에는 항상, 주판알을 튕기는 일에 밝지 않은 그가 있었다고 말해야 옳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국가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날 지경에 놓인 평택 대추리 주민들 곁에,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폭도로 내몰리고 결국 죽어서 내려온 용산 주민들 곁에, '종북'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혀 '내란죄'라는 마녀사냥에 내몰린 소수당의 당원들 곁에, 고통 속에 죽어간 아이들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리로 나선 세월호 가족들의 비탄과 한숨 곁에 늘 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