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이색 전시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새롭게 쓰게 하는 컬렉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겸재 정선부터 피카소와 미로까지!
오마이뉴스는 "김씨가 단국대 아닌 경기대를 졸업했다"고 보도했다.
'페이지랭크'의 개념을 아주 쉽게 설명했다
진주 밭 주변을 유유히 헤엄치는 영상을 찍어보자.
이성이 정서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와버리곤 하지요. 억누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반대의 감정을 대립시킬 수 있습니다. 불안한 느낌이 들 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떠올리면 안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말입니다.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백정도 사람이고 양반도 사람이다. 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 형평운동은 우리 근대사상 최초의 '인권 운동'으로 평가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차별이란 자체가 인간성에 반하는 그릇된 행동임을 선언한 운동이었다.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일어서서 싸우는 것도 정의로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일원도 아니면서, 전혀 차별과 탄압과는 거리가 먼 처지의 사람으로서 설움받는 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과 어깨를 걸고 앞장까지 서고 그 때문에 받아야 할 불명예와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하는 행위는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인간성의 고갱이일 것이다. 강상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트라이톤은 스쿠버 마스크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에서 이름을 따왔다.
특이하게도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순수하게 자신의 모습에만 열중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이 자화상만큼 인간미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드물지요. 이 작품 안에서 라파엘로는 부드럽지만 당당해 보입니다. 고갱과 고흐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찾아내고 탐구하는 과정을 자화상으로 드러냈다면 라파엘로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자화상으로 남기는 일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만사를 금전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서열을 매겨야만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그런 척도에 맞지 않는 인간, 그런 척도와는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인간은 고립당하고 고뇌할 수밖에 없다. 고흐의 서간이 오래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믿는 바로는, 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고뇌의 원형'이 특이할 정도로 면밀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 '고뇌의 원형'은 글자 그대로 혼신을 다해 고투를 벌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렇듯 '가사노동하는 어머니-아내'를 신성시하는 목소리 그 자체가 여성 억압의 근원이었음을 지적해왔다는 역사적 사실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가사 노동을 여성에게 모두 떠맡기고 그것을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칭송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마치 타히티에서 노동하는 노예들을 바라보는 고갱의 감상적 시선을 연상시킨다. 혹은, 기왕 황교익이 일제 식민지 시절을 언급하였으니, '조선의 미'를 예찬하던 일본 지배층의 아련한 눈빛과도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당연히 그러한 노동은, 수혜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원적 풍경의 일부로 감상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하는 고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문단의 이러한 '표절의 환락가화(歡樂街化)'가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왔던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야말로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윽고 구성되고 체계화된 것임을 또렷이 증언할 수 있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한국문단의 '뻔뻔한 시치미'와 '작당하는 은폐'는 그 이후 한국문단이 여러 표절사건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 체질화시킴으로서 한국문학의 참담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문인들은 신경숙의 표절 사실을 알건 모르건 간에 어쨌든 '침묵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출발은 늘 그렇듯 호기심이었다. '사람 몸에 기술을 좀 더 밀착시키면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걸 넘어 학습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사람 손을 조종해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고, 반복 훈련을 거쳐 나중에는 로봇 없이도 피아노를 잘 치고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된다면? 마침 '웨어러블'이란 꼬리표를 달고 온갖 기기들이 앞다퉈 인체에 기술을 덕지덕지 붙일 때였다. 게다가 다타는 취미 수준을 넘어 직접 로봇을 만들어 쓰는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였다. 다타는 어린 시절 자기 손을 잡아 이끌며 알파벳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는 '그림 가르치는 로봇 팔'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