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사면.
레전드다, 레전드
"염치없지만 꼭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땐 그랬지.
기업 하는 사람이 경제를 안다는 것은 결국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이명박이 경제를 안다? 지나고 보니 우스꽝스러운 얘기였다. 기업을 아는 것이지 경제를 아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경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생각이다. 기업가 출신들은 친기업 정책을 쓰지 친국민 정책을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책을 전환하면 거기에 맞는 사람을 써야 한다. 안 맞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권력의 사찰은 참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나와 정태근처럼 한번 완전히 망가뜨리기 위해 사찰하기도 하고, 박형준처럼 MB 주변으로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기도 했다. 이진복처럼 일파들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조사하기도 했다. 다양한 목적으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사찰을 한 것이다. 게다가 인사나 이권 민원을 잘 안 들어주는 사람들도 사찰했다. 그야말로 권력을 개인 물건처럼 남용한 것이다.
보통 일류는 공통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인사 문제로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그러지 않는다. 반면 삼류는 자기가 삼류인지 알기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뇌물도 갖다 바치고, 아부도 하고 그런다. 그러다 보면 대개 인사에서 삼류가 등용되기 쉽다. 그러다 결국 조직 전체가 다 삼류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MB의 정부 인사의 컨셉은 MB가 한 번이라도 겪었고, 또 MB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야 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을 쓴 경우는 대개 주변 친인척이나 지기 등이 추천한 경우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이도 저도 관계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못 쓴다.
인수위가 출범하면서 당선인 비서실 쪽에서 인사 작업을 한 사람은 나와 김원용, 박영준 세 명이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 나는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막상 인사 작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사를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자면 내가 잘 아는 인물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거론됐다.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황당했다. 이런 인물이 무슨 청와대 수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큰일 나겠는데' 하는 걱정이 앞을 가렸다.
이상득은 임태희를 후보 비서실장으로 앉힌 뒤 원로자문그룹이라는 '6인회'를 내세워 현안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6인회'는 실권이 있는 모임은 아니었다. 모양 갖추기에 불과했다. 이상득이 혼자 개입하기 뭐하니까 모양새를 갖춰서 슬쩍 물타기 하고 들어와서 관여를 하려고 만든 것이다. 김덕룡이나 박희태가 역할을 했다면 얼마나 했겠나. 이를테면 내가 선대위 안을 짤 때도 이상득, MB에게 승인을 받은 후 6인 회의를 소집해서 마치 거기서 결정한 것처럼 하는 식이었다.
MB가 시장으로 있을 때부터 MB 주변에서 사실상 제일 힘 센 실력자는 이상득이었다. 나나 정태근도 MB를 설득하다가 안 되면 이상득에게 달려가곤 했다. MB에게는 이상득이 유일하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MB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니 노련한 정치인인 이상득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두 사람은 수시로 통화했으며, 이상득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각종 일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리로 조성된 자금으로 경우회 기금의 종잣돈이 만들어지고, 각종 수의 계약 등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애국단체'라고 주장하는 경우회는 '반국가 종북세력척결'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권력자를 옹호하고 그들과 밀접한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경우회의 어버이연합,탈북단체 지원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돈과 조직을 앞세운 경우회의 정치 활동과 집회, 관변단체 지지는 계속될 것입니다.